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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대한제국기에 있어서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의 개념적 구분에 관한 연구

이용수 127

영문명
A Study on Conceptual Distinction Between Gisaeng and Sampae during Korean Empire Period: Focusing on Legal, Institutional, and Social Attribute of Gisaeng and Sampae and Conceptual Difference
발행기관
한국문화융합학회
저자명
水谷淸佳(Mizutani Sayaka)
간행물 정보
『문화와융합』제43권 11호, 539~562쪽, 전체 24쪽
주제분류
복합학 > 학제간연구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1.11.30
5,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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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연구에서는 대한제국기의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에 관한 기사 및 자료들을 최대한 빠짐없이 총망라하여‘한국의 기록과 사료들’만을 토대로 대한제국기 당시의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의 ‘법적 정책적 사회적 속성’과 개념적 차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결론적으로 ‘삼패(三牌)’는 ‘기생(妓生)’이 아니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대한제국기(현재까지 기록상1899년 8월 등장~1910년 8월 소멸)에 존재했던 ‘삼패(三牌)’는 ‘법적 정책적 사회적’으로 ‘예창기(藝娼妓)’였지‘기생(妓生)’이 아니었다. 즉 대한제국기에 있어서 ‘기생(妓生)’과 ‘삼패(三牌)’는 ‘법적 정책적 사회적 속성과 역할’이 다른 별개의 집단이었고, ‘삼패(三牌)’는 ‘기생(妓生)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조선사회와 조선인들 사이에 「기생(妓生)에는 일패(一牌), 이패(二牌), 삼패(三牌)의 3종류가 있었다」라는 분류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1901년 조선개화사 의 쓰네야 세이후쿠에 의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기생(妓生)에는 일패(一牌), 이패(二牌), 삼패(三牌)의 3종류가 있었다」라는 ‘왜곡되고 틀린 기생의 분류법’의 무분별한 인용 및 재생산을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 120년간 ‘가무를 전업으로 했던 기생(妓生)’이 「‘삼패=기생’→‘삼패=가무와 매음을 겸업하던 집단’→따라서 ‘기생=가무와 매음을 겸업하던 집단’」이라는 ‘왜곡된 논법’에 의해 ‘기생(妓生)은 가무(歌舞)와 매음(賣淫)을 겸업으로 하던 존재’로 왜곡되어 온 ‘기존까지의 학술적 오류’와 ‘기생(妓生)에대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삼패(三牌)도 기생에 포함된다’ 따라서 ‘기생(妓生)에는 일패(一牌), 이패(二牌), 삼패(三牌)의 3종류가 있었다’라는 사(史)적으로 틀린 분류법도, ‘조선의 기생은 갈보(蝎甫) 매춘부(賣春婦)이다’라는 왜곡된 정의도 모두 ‘재한일본인들’과 ‘친일파’가 남겨놓은 ‘기생에 관한 왜곡된 역사의 잔재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왜곡된 기생의 정의와분류법’은 이제 그만 한일 학계 및 일반사회에서도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영문 초록

This study tried to include articles and materials about “Gisaeng” and “Sampae” during theKorean Empire Period as much as possible to clarify “Legal, Institutional, and Social Attributeand Conceptual Difference” of “Gisaeng” and “Sampae”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basedon “Korean Records and Historical Records” empirically. “Sampae” that existed during Korean Empire Period (Emerged in August 1899 and disappearedin August 1910) was not “Gisaeng”. From August 1899 when it first emerged in the record toAugust 1910 when the term, “Sampae”, rapidly disappeared from the historical records, “Sampae”was constantly controlled and managed by the Korean Empire government and the JapaneseColonial Residency-General as Yechanggi. In the aspect of legal, institutional and social perception,“Sampae” had different properties from “Gisaeng”. Therefore, the Joseon society and people didnot treat “Sampae” as “Gisaeng”. Defining Gisaeng of the Joseon as Galbo and prostitute, dividing Gisaeng into Ilpae, Ipae,Sampae, using the term, Ilpae, including Sampae in Gisaeng are all “Remains of the distortedhistory recorded by the Japanese residents in Korea and pro-Japanese groups.” Therefore, it istime to end such distorted definition and classification on Gisaeng of Korea in Korean andJapanese academics and the general public.

목차

1. 문제제기
2. 대한제국기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의 ‘법적 정책적 사회적 속성’과 개념적 차이
3. 결론 및 제언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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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水谷淸佳(Mizutani Sayaka). (2021).대한제국기에 있어서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의 개념적 구분에 관한 연구. 문화와융합, 43 (11), 539-562

MLA

水谷淸佳(Mizutani Sayaka). "대한제국기에 있어서 ‘기생(妓生)’과 ‘삼패(三牌)’의 개념적 구분에 관한 연구." 문화와융합, 43.11(2021): 539-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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