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조선후기 김해지역의 민간 구빈(救貧) 활동
이용수 17
- 영문명
- Civil Relief Activities in Kimhae Province in Late Joseon Era: Focusing on the Case of the Kims
- 발행기관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저자명
- 배상현(Bae, Sang-Hyun)
- 간행물 정보
- 『민족문화논총』민족문화논총 제79집, 449~482쪽, 전체 34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1.12.30
6,880원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국문 초록
본 연구는 조선후기 民間의 救貧活動을 김해지역 金富善 부부의 사례를 고문서를 통해 접근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1769~1783년 김해지역에는 흉년과 기근으로 飢民이 속출 하고 있었다. 김부선 부부는 밥짓는 불길이 끊어지고 굶주려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구빈활동에 참여하였다. 적게는 몇 말에서 많게는 수십 석의 곡식을 내어 한꺼번에 수십 명에서 2백 명에 가까운 飢民을 구제하였으며, 이로 인해 춘궁기에는 곡식이 탕진되기도 하였다. 또 바닷가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배를 매입해 주기도 하고 부과된 闕封을 責納하기도 하였다. 김씨 부부의 선행은 지역 飢民, 居住民, 儒生의 대표들에 의해 선양되었다. 이들 내용에 따르면 그들의 구빈활동이 집중되던 1783~1784년 남편 김부선은 風症으로 擧動이 어려워 부인 김씨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활동하였다. 그녀는 유교적 소양을 겸비한 인물로 집안을 대표해 재물을 내기도 하고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는 등 상황에 맞추어 기민들을 구제하고 있었다. 계묘년(1783) 이후 김씨부부의 활동을 표창해 달라는 청원이 줄을 이은 것은 이 시기 국왕의 綸音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청원자들은 府使, 監司, 御使에게 단계별로 상서하였는데, 그 내용을 통해 검토와 처분의 결과가 適時에 나오지 않거나, 처분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표출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사례로 살핀 김부선 부부의 경우는, 조선후기 기민이 속출하 는 재난 상황에서 민간의 중간 계층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인 구빈활동에 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중앙-지방, 官-民의 거버넌 스가 제대로 구비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점 또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영문 초록
This thesis aims to examine the civil relief activities in Kimhae province in late Joseon Era with old documents especially in the case of Kim Bu-son and his wife. From 1769 to 1783 the province saw a widespread starvation resulting from a short crop and famine. Witnessing the sufferers around them, the couple willingly took active part in relief campaign. They relieved up to 200 neighbors at a time with several or dozens of pounds of crops. They also helped fishers purchase boats and paid taxes for the neighbors in need. Their deed was recognized by Confucian scholars, residents and the starved. A royal order in 1783 seemed to stir successive petitions for their recognition, which brought out efforts to correct irrational measures as well as to facilitate administrative procedure. It is made clear that, in such catastrophic situations as famine, middle-class civilians willingly and positively participated in the relief campaign in the case of Mr. and Mrs. Kim. It is also pointed out, some limitations of governance between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or civil and official level not working properly.
목차
Ⅰ. 머리말
Ⅱ. 자료의 소개
Ⅲ. 金富善 부부의 救貧활동
Ⅳ. 救貧 活動의 性格
Ⅴ.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원효와 경산
- 16세기 호남사림 丁焰의 학맥과 知今書舍 강학
- 일제강점기 대중매체의 ‘김옥균’ 표상화 과정
- 조선후기 상주 白玉洞影堂의 운영과 陞院
- 『고려대장경』 「대반야바라밀다경」 권1 彫成에 대한 考察
- 봉화 금정자 혼례연구
- 조선후기 향촌운영기구의 건립 추이
- 16세기 한중 서원지의 지식사적 의미
- 1765년 虎溪書院 『大學』 강회 연구(1)
- 조선후기 단성지역 西人세력의 형성과 활동
- 17세기 창원 유향소의 운영 실태
- 가야사의 획기와 연구현황
- 민족문화논총 제79집 목차
- 사랑채와 자제의 사회화 프로젝트
- 조선전기 경상우병영의 설치와 이설
- 芝山 曺好益의 敎學思想
- 산청지역 남명학파의 규모와 동향
- 18세기 옥산서원 노비의 양상
- 대전 도산서원(道山書院)의 강학 관련 자료와 시사점
- 인공지능 시대, 마을공동체의 의의와 실천
- 1798~1799년 한 사대부가 청소년이 경험한 전염병 이야기
- 조선시대 근기지역 서원의 강규와 강학
- 2・28민주운동의 인식변화와 4・19혁명으로의 계승
- 조선후기 김해지역의 민간 구빈(救貧) 활동
- 漢文書札 慰狀의 格式과 用語 연구
- 한국의 姓貫制와 本貫 ‘慶州’ 姓氏
- 영호(嶺湖) 통섭의 기미(幾微)와 그 좌절
- 동해 파도 위의 구도자 원효, 그 숭고한 관음 친견
- 조선후기 분재와 가정경영 그리고 지역사회
- 명암(明庵) 이태일(李泰一)의 역학관
- 경제체계와 전통시장의 공간적 성격 변화
- 6~7세기 고구려 天下觀의 변천
- 조선 성리학에서 여헌학파의 학파적 좌표
- 신산서원의 강학전통
참고문헌
관련논문
최근 이용한 논문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