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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대중지의 '역사' 수용 방식과 글쓰기 전략

이용수 161

영문명
The Pattern of Embracing 'History' and the Writing Strategies of Modern Popular Magazines
발행기관
한국문학회
저자명
이승윤(Lee, Seung-Yun)
간행물 정보
『한국문학논총』제56집, 5~35쪽, 전체 31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0.12.30
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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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근대 대중종합잡지의 역사 수용 방식과 역사를 소재로 한다. 양한 글쓰기 전략에 대한 연구이다. 본 연구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간행되는 종합 대중지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당대의 사회.역사적인 분위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대중에 대한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개벽사'에서 발행된 『별건곤』의 경우는 『개벽』의 강제 폐간 이후 변화된 사회 현실과 대중의 코드에 맞춘 출판물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본 연구의 일차 과제는 『별건곤』(1926. 11~1934. 6)에 실린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관련 독물(讀物)을 대상으로 그것의 글쓰기 전략들을 살피는 것이다. 『별건곤』에는 국내외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논평(論評),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한 사화(史話), 인물의 전기(傳記), 역사를 소재로 한 애화(哀話)와 실화(實話), 대담(對談), 설문(設問), 그리고 허구적 요소가 강조된 야담(野談)과 기담(奇談) 등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과거 역사에 대한 호출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귀속성의 느낌과 사고를 부여하는 '집단 기억'을 갖게 했으며. 그것은 곧 개벽에서 별건곤으로 이어지는 민중운동의 기본적인 토양이기도 하였다. 창간 당시 '취미.실익잡지'를 표방하였던 『별건곤』은 저급한 오락거리가 아닌 역사와 문학, 무용과 음악, 박물관, 동물원, 활동사진, 극장 등 당대 첨단의 근대적 취미와 교양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별건곤이 지향한 '취미'의 최초 취지가 고급의 취미와 교양을 일반 민중들이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 또한 창간 초기에는 단순히 흥밋거리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계몽을 위해 동원되었던 것이었다.별건곤에 등장하는 다양한 양식적 명칭은 뚜렷한 양식 개념에 입각하여 부여된 명칭이라고 할 수 없다. 양식 표기는 특정 양식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편집자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들이 밝힌 양식의 의미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양식의 의미와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표기한 특정한 양식 속에 들어있는 글 역시도 일관성을 갖고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당시 편집자들의 양식에 대한 혼란 때문이라기보다는 양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즉, 편집자들의 관심은 양식 자체보다는 어떠한 표기가 보다 더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슷한 성격의 글이라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명이 부여된 것이다. 또한 각각의 양식은 부여된 명칭의 경계를 넘어 혼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진술은 하나의 글이 편집자에 의해 무엇으로 표기되든지 간에 각 양식 간의 분류가 불가능할 만큼 차용과 삼투, 그로 인한 다양한 변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양식 간 전환과 교섭의 과정에서 하나의 양식적 개념으로 수렴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뜻한다. 잡지에 실린 다양한 글쓰기 상호간의 변개와 삼투, 차용의 과정 중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많은 경우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통치 아래서 이러한 글쓰기를 통한 역사담론의 생산은 소극적으로는 위무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는 절멸의 위협에 맞서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그것은 곧 민족 성원들 사이의 결속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민족의 개별적 존재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담론 생산 자체가 민족 내부의 모순을 덮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즉,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도출된 '민족의 개별성'이란 결국 제국으로부터 민족을 분절시킴으로써 특수성과 지방성(locality)을 담보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과거의 '역사'는 민족적 결집을 위한 매개체였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제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주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1930년대 대중지를 통한 역사를 소재로 한 글쓰기의 대중적 소비는 작가들에게는 역사소설 창작의 모티프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른바 '역사소설시대'라 불릴 만큼 역사소설의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들 작품이 갖는 대중성, 통속성의 근간은 바로 대중 종합지가 생산해 낸 역사 소재 글쓰기의 전략과 그것을 소비한 독자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업적 목적에 의해 출판되는 잡지의 성격상 '역사'의 내용은 얼마든지 시대적 변화와 독자의 취향에 따라 기민하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문 초록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look into the writing strategies used in various reading materials which are concerned with history contained in 『Byeolgeongon(별건곤)』 (Nov. 1926-Jun. 1934). The withdrawal of past history enabled members of a community to have a 'collective memory', which endowed them with feelings and thoughts with strong attribution, and this was also the basic foundation of the folk movement, which led to 『Byeolgeongon』beginning from 『Gaebyeok(개벽)』. 『Byeolgeongon』, which claimed to be a 'magazine for leisure and practical benefit' at the time of its first publication, was focused not on vulgar pastimes but on modern tastes and culture. Therefore, its contents were mobilized for enlightenment rather than for simple interests. The diverse, stylish names that appeared in 『Byeolgeongon』 cannot be thought of as being named on the basis of the concept of clear style. This was not because editors back then were confused about a certain style but because they were absent in perception about a style itself. The interest of the editors was regarding what writing would provoke the attention of the readers more rather than a certain style itself. The production of historical discourse through such writing under the forcible Japanese colonial rule functioned as a means of consolation from a passive perspective, and as a means to face threats of eradication from an active perspective. This made it possible to enhance bonding among the people, and, at the same time, confirmed the 'individual existence of the people'. However, the production of such discourse, on the other hand, became a means to hide contradictions within the people. That is, the 'individuality of the people', which was withdraw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couldn't do more than ensure special characteristics and locality by dividing the people from the empire, in the end. Ultimately, the 'history' of the past was a vehicle for unifying the people, and yet, it was a major tool for justifying and rationalizing the colonial rule of the empire. The production of historical novels was so active as to be called'the age of historical novels' in the mid-1930s. The root of the popularity and vulgarity of those works could be found in readers who consumed them as well as in the writing strategies of historical substances that were produced by popular magazines. Given the nature of a magazine published for profit, the contents of 'history' could be readily and quickly altered according to changing of the times and to the tastes of readers.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개벽』에서 『별건곤』으로 : ‘취미’와 ‘실익’을 통한 민중계몽의 모색
Ⅲ. 양식에 대한 인식 부재와 글쓰기의 전략
Ⅳ. 호출된 역사와 ‘집단기억’의 구성
V. 남은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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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Lee, Seung-Yun). (2010).근대 대중지의 '역사' 수용 방식과 글쓰기 전략. 한국문학논총, 56 ,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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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Lee, Seung-Yun). "근대 대중지의 '역사' 수용 방식과 글쓰기 전략." 한국문학논총, 56.(2010):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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