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高麗後期 對中國使臣 送詩에 表現된 外交認識의 變化와 그 意味
이용수 266
- 영문명
- Changes and their Significance of Diplomatic Recognition Expressed in Valedictory Poems for the Envoys to China in the late Goryeo Dynasty
- 발행기관
-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 저자명
- 엄경흠(Eom Kyung-Hum)
- 간행물 정보
- 『동양한문학연구』東洋漢文學硏究 第27輯, 277~301쪽, 전체 25쪽
- 주제분류
-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08.08.01
5,800원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국문 초록
고려 후기는 蒙古의 침략과 元의 성립, 漢人 群雄의 등장으로 인한 원의 쇠퇴, 明의 등장과 北元의 퇴진 등 국제관계가 급격히 변하던 시기였다. 이시기 중국의 여러 세력들은 고려의 후원을 기대하고, 고려 또한 그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대내외적인 개혁과 안정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당시 동아시아의 변화와 이에 대처하는 외교에는 수많은 사신들의 활약이 있었으니, 한인 군웅들은 사신의 파견으로 고려와의 관계를 모색하였고, 고려도 적극적으로 답하였다. 이는 원에 대한 고려의 事大政策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새로운 세력과의 적극적인 관계 모색이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많은 사신들을 보내면서 주었던 送詩는 자신이 사행하면서 쓰는 것이 아닌, 사신을 보내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신 개인에 대한 기대와 파견 대상국에 대한 평가가 우선된다. 따라서 송시를 통해 당대의 외교인식을 살펴보고 이의 시대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규보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와는 달리 이제 막 흥기하는 몽고의 세력에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몽고는 흉포하고 무도하여 교화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몽고족인 원의 성립과 그들과의 관계에 직면했던 이제현을 비롯한 당시 사대부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은 몽고족이 아닌 천자국으로 원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원의 종족적 가치보다는 외교적 역량에 더욱 가치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시작되면서 張士誠, 方國珍, 朱元璋 등과의 관계 모색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있어 사대부들의 태도를 보면, 원에 대한 그들의 외교적 인식은 결코 의리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외교적 역량에 관계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역량 중심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은 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고려 말 국제관계의 혼돈 양상 속에서는 명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볼 때 고려 시대의 외교관계는 종족적이거나 의리로서의 事大 지속이 아니라, 형세의 변화에 따른 외교적 역량의 우열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당시 동아시아의 변화와 이에 대처하는 외교에는 수많은 사신들의 활약이 있었으니, 한인 군웅들은 사신의 파견으로 고려와의 관계를 모색하였고, 고려도 적극적으로 답하였다. 이는 원에 대한 고려의 事大政策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새로운 세력과의 적극적인 관계 모색이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많은 사신들을 보내면서 주었던 送詩는 자신이 사행하면서 쓰는 것이 아닌, 사신을 보내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신 개인에 대한 기대와 파견 대상국에 대한 평가가 우선된다. 따라서 송시를 통해 당대의 외교인식을 살펴보고 이의 시대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규보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와는 달리 이제 막 흥기하는 몽고의 세력에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몽고는 흉포하고 무도하여 교화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몽고족인 원의 성립과 그들과의 관계에 직면했던 이제현을 비롯한 당시 사대부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은 몽고족이 아닌 천자국으로 원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원의 종족적 가치보다는 외교적 역량에 더욱 가치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시작되면서 張士誠, 方國珍, 朱元璋 등과의 관계 모색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있어 사대부들의 태도를 보면, 원에 대한 그들의 외교적 인식은 결코 의리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외교적 역량에 관계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역량 중심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은 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고려 말 국제관계의 혼돈 양상 속에서는 명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볼 때 고려 시대의 외교관계는 종족적이거나 의리로서의 事大 지속이 아니라, 형세의 변화에 따른 외교적 역량의 우열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aims at investigating the nobility"s understanding of diplomacy through the valedictory poems written when many envoys were sent to China in the late Goryeo Dynasty, a period of diplomatic chaos. As valedictory verses were written not by the diplomat himself but by those who sent him at the time of his departure, the expectation of the envoy and the assessment of the destination nation are first considered. Therefore, it is meaningful to examine diplomatic understanding in the given period by means of valedictory poems and their periodic variations.
The late Goryeo Dynasty was the period when international relations were changing quickly with the invasion of Mongolia and the foundation of the Yuan Dynasty, the decline of the Yuan Dynasty due to the emergence of many Chinese rival leaders, and the fall of the Northern Yuan Dynasty caus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Dynasty. Many Chinese powers in the period expected the support of Goryeo and Goryeo also sought to introduce domestic and foreign reforms and stability by watching their changes.
The East Asian tumultuous time and diplomacy dealing with it needed the activities of many envoys. Among many Chinese leaders, Jang Sa-seong(張士誠) tried to make a good relation with Goryeo by actively dispatching diplomatic representatives and Goryeo responded to his efforts positively. This means a change in the worship of the powerful to the Yuan Dynasty and a positive search for the relationship with the new power.
The period when Lee Kyu-bo was in charge, it was urgent to cope with the newly~emerging Mongolian power. As a result, to him, Mongolia was recognized as a brutal and rude presence to be enlightened. This recognition was in part caus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Lee Kyu-bo and Choe military regime, but Mongolia could not overcome the diplomatic recognition of Goryeo at that period. If Lee Kyu-bo lived until the foundation of the Yuan Dynasty and its intervention in the domestic affairs of Goryeo, what happened to the diplomatic recognition of Goryeo for Yuan is a question to be asked. In answer to this question, it is thought that Lee Kyu-bo might have expressed the Yuan Dynasty as a diplomatic object to worship as an emperor"s nation since the utilitarian aspect of diplomatic relations was more important to the Goryeo diplomacy than the loyalty on which the Joseon Dynasty later focused.
Examining the attitude of the then noble men including Lee Je-hyeon who were faced with the foundation of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Mongolian dynasty Yuan, they recognized it as a emperor"s nation Yuan not as a simple Mongolian kingdom. This shows that they valued the diplomatic capacity of the Yuan Dynasty more than the racial origin.
This recognition of international relations focusing on the diplomatic power was applied to the Ming Dynasty in the chaotic situation of foreign relations in the late Goryeo Dynasty as well as to Yuan.
It is found out that the diplomatic relations of the Goryeo period was inclined to concentrate on the diplomatic capability depending on situational changes, not on the racial origin or the loyalty to continue the worship to the power.
The late Goryeo Dynasty was the period when international relations were changing quickly with the invasion of Mongolia and the foundation of the Yuan Dynasty, the decline of the Yuan Dynasty due to the emergence of many Chinese rival leaders, and the fall of the Northern Yuan Dynasty caus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Dynasty. Many Chinese powers in the period expected the support of Goryeo and Goryeo also sought to introduce domestic and foreign reforms and stability by watching their changes.
The East Asian tumultuous time and diplomacy dealing with it needed the activities of many envoys. Among many Chinese leaders, Jang Sa-seong(張士誠) tried to make a good relation with Goryeo by actively dispatching diplomatic representatives and Goryeo responded to his efforts positively. This means a change in the worship of the powerful to the Yuan Dynasty and a positive search for the relationship with the new power.
The period when Lee Kyu-bo was in charge, it was urgent to cope with the newly~emerging Mongolian power. As a result, to him, Mongolia was recognized as a brutal and rude presence to be enlightened. This recognition was in part caus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Lee Kyu-bo and Choe military regime, but Mongolia could not overcome the diplomatic recognition of Goryeo at that period. If Lee Kyu-bo lived until the foundation of the Yuan Dynasty and its intervention in the domestic affairs of Goryeo, what happened to the diplomatic recognition of Goryeo for Yuan is a question to be asked. In answer to this question, it is thought that Lee Kyu-bo might have expressed the Yuan Dynasty as a diplomatic object to worship as an emperor"s nation since the utilitarian aspect of diplomatic relations was more important to the Goryeo diplomacy than the loyalty on which the Joseon Dynasty later focused.
Examining the attitude of the then noble men including Lee Je-hyeon who were faced with the foundation of and the relationship with the Mongolian dynasty Yuan, they recognized it as a emperor"s nation Yuan not as a simple Mongolian kingdom. This shows that they valued the diplomatic capacity of the Yuan Dynasty more than the racial origin.
This recognition of international relations focusing on the diplomatic power was applied to the Ming Dynasty in the chaotic situation of foreign relations in the late Goryeo Dynasty as well as to Yuan.
It is found out that the diplomatic relations of the Goryeo period was inclined to concentrate on the diplomatic capability depending on situational changes, not on the racial origin or the loyalty to continue the worship to the power.
목차
국문초록
Ⅰ. 序論
Ⅱ. 對中意識의 變化와 그 意味
Ⅲ.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Ⅰ. 序論
Ⅱ. 對中意識의 變化와 그 意味
Ⅲ.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南孝溫의 自挽詩 硏究
- 佛敎 「和歸去來辭」에 관한 考察 - 韓中佛敎文學을 중심으로
- 朝鮮後期 驪州 李氏家의 書畵收藏 硏究
- 이동동사 ‘奔’과 ‘走’의 의미 범주 연구 - 『三國史記』를 중심으로
- 鄕儒 黃胤錫의 泮村 寄食과 卜妾
- 沆瀣 洪吉周의 文章中原 探索
- 高麗後期 對中國使臣 送詩에 表現된 外交認識의 變化와 그 意味
- 小訥 盧相稷의 저술 및 문헌출간활동 - 구한말 영남 지식인의 지식소통의 공간과 방식
- 記錄文에 대한 想像的 接近의 일례 - 장영실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 論語 學而篇 硏究 - 논어 편찬 과정에 대한 一 管見
- 東洋漢文學會 會則 외
- 이재 황윤석의 서학 인식과 특징
- 호남선비 황윤석이 본 ‘호남차별’ 문제
- 근대계몽기 개신 유학자들의 성 담론과 그 의의 - 개가‘론’∕열녀‘담’을 중심으로
- 申緯의 詩人意識과 技法으로서의 詩學
- 梅花詩에 나타난 李滉의 意識指向
참고문헌
관련논문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분야 BEST
- ‘밈(meme)’을 활용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호 협력과 융복합교육
- 연구 동향 분석을 통해 본 학문 목적 한국어교육 연구의 실태와 제언
- 국어의 줄임말 현상에 따른 언어변이 양상과 문제점
최근 이용한 논문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