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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통 유학자의 한 초상, 그 의의와 한계

이용수 39

영문명
A Portrait of one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 significance and Limitations: Focusing on LEE Byeong-gon and his 『Collection of Toesujae’s works』(『退修齋文集』)ㆍ『Toesujae Diary』(『退修齋日記』)
발행기관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저자명
이준규
간행물 정보
『동양한문학연구』第66輯, 175~216쪽, 전체 42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10.31
7,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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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병곤은 『『退修齋文集』 과 『『退修齋日記』』 등을 통해 볼 때, ‘新舊兼全’한 개량 유학자이기보다는 전통 유학자라고 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는 선비로서 한창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려는 30대 이후 장년부터 세상에서 얻은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물러나 지낼 60대 전후 만년까지 인생의 주요한 시기 대부분을 일제강점기 현실에서 보냈다. 그의 생애는 자기 서실 당호를 ‘退修齋’로 하고 그것을 자신의 호로 삼은 다음 「退修解」를 지어 그 뜻을 밝힌 1937년을 기준으로 일제 지배하 망국의 현실에서 일제와 ‘거리 두기’를 하기 위해 ‘家業의 관리와 문중 사업의 참여’라는 제한된 외적 활동을 하면서 전통문화의 보존과 후진 교육에 힘쓰던 시기와 자신의 현실적 책무를 자제에게 넘기고 오로지 유학의 心學 공부에 매진하던 두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의 ‘유학’은 전대 유학 본연의 ‘修齊治平’이라는 현실적, 역사적 지평을 사라진 일제강점기에 처해 성인 공자의 學德을 목표로 자기완성의 길로만 나아간, 조선시대의 어느 학자에게서도 보기 어려운 극도로 內省化되고 극도로 宗敎化된, 그러면서도 공부의 방법에서도 아주 정제된 유학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그는 학술적 저작 대신 1906년 25세 때부터 1948년 67세 임종하기 직전까지 기록한 『『퇴수재일기』』를 통해 남겨놓았다. 이와 함께 그는 일제강점기에 내내 전통문화 보존과 후진 교육에 힘써서 『星湖文集』』간행과 같은 역사적인 문화 사업을 주관하고, ‘正進義塾ㆍ正進學校’를 통해 우리나라 근대교육사에서 뜻깊은 교육 사업을 행하였다. 다만 『『성호문집』』 간행은 밀양 향내 여론을 잘 결집해내지 못하여 密陽 驪州李氏 一門의 사업이 되고 만 것이 아쉬운 점이고, ‘정진의숙ㆍ정진학교’를 통한 교육은 유학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 漢學의 계승을 목표로 했다는 의의가 있으면서도 그것이 원천적인 한계가 되어 전통 서당의 한 변용된 형태로만 존재하고 민주사회 건설을 지향한 근대교육의 취지와 이상을 실현하는 대중적인 학교로는 발전해나가지 못한 한계가 있다.

영문 초록

In view of Collection of Toesujae’s works (『退修齋文集』) and 『Toesujae Diary』 (『退修齋日記』), LEE Byeong-gon is a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 rather than a modernized one who combined new and old ideas. Unlike others who would intend to go into the world and try to achieve aspirations as a scholar, LEE Byeong-gon in his 30s and afterwards gave up all his positions in the world and stayed in the reality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during the most of his major years from his 60s to his latter years. Calling his own study room 'Jaetwesu' and himself 「Twesuhae」, he expressed what he intended to do in 1937. Since then, LEE Byeong-gon was involved only to a limited extent the external activity of 'family business participation and clansman business management' for distancing from the Japan Empire in the reality of national ruination under its rule. His years may be divided into two: the time during which he sought to preserve traditional cultures and training of the younger generation; and the time during which he focused only on studies of Confucianism with realistic duties left to his children. His ‘Confucianism’ was a pursuit of self realization towards the state of learning and virtue of Confucius in the face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ere the realistic and historic prospect—'Sujechipyeong(修齊治平)'—disappeared even though it was the nature of Confucianism of the previous generation. It was a type of Confucianism that was quite rare among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introspective, extremely religious, and quite refined type of studies. His achievements were recorded not in one of this academic works but in 『Toesujae Diary』 (『退修齋日記』), which was documented from 1906 when he was 25 years old to 1948 when he was 67 years old right before his death. In addition, he devoted himself to preservation of traditional cultures and training of the young generation throughout the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He conducted historic cultural projects such as publication of 『Sunghomunjip』(『星湖文集』)』 as well as educational projects significant in Korea's modern education history through ‘Jeongjinuisuk and Jeongjin School.’ In the context of publication of Seonghomunjip, however, he failed to gather public opinions in the town of Milyang and thus it merely became the Milyang Yeoju Lee family's project. The education through 'Jeongjinuisuk and Jeongjin School' was of significance in that it aimed to succeed to traditional Chinese classics focusing on Confucianism, but that was the fundamental limitation on the other hand. The school functioned merely as a modified form of traditional village school and failed to advance into a popular school realizing the gist and ideal of modernized education which pursued the construction of a democratic society.

목차

1. 서론
2. 일제강점기 이병곤의 삶과 활동, 가업 관리와 문중 사업 참여
3. 이병곤의 만년 호 ‘退修齋’와 ‘退修’의 의미
4. 내성화, 종교화한 이병곤의 ‘儒學’
5. 이병곤과 일제강점기 전통 유학자의 한 초상, 그 의의와 한계
6. 결론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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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2023).일제강점기 전통 유학자의 한 초상, 그 의의와 한계. 동양한문학연구, (), 17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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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일제강점기 전통 유학자의 한 초상, 그 의의와 한계." 동양한문학연구, (2023): 17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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