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조선 후기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연구 - 『의궤』의 분석을 중심으로 -

이용수 549

영문명
A Study on Bowyers and Arrow Mak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With a Focus on the Analysis of Uigwe -
발행기관
한국조형디자인학회
저자명
장경희(Jang Kyung hee)
간행물 정보
『조형디자인연구』조형디자인연구 제19집 1권, 109~133쪽, 전체 25쪽
주제분류
예술체육 > 미술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6.03.20
5,80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조선시대에 활을 만드는 궁인(弓人)과 화살을 만드는 시인(矢人)은 국가에서 우대하였다. 당시 활과 화살은 국가를 방어할 무기로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두 장색의 장인들은 다른 장인들보다 숫자도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들 장인을 주목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후기 왕실의 의례행사 때마다 임시로 설치한 관청[都監] 217곳에서 활동한 궁인과 시인을 『의궤(儀軌)』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처음으로 밝혔다. 우선, 궁인과 시인은 조선 후기 국왕의 장례나 혼인할 때 설치한 임시관청[都監]에 가장 많이 동원되었다. 특히 이들은 국장도감의 1방과 3방에 분속되어 각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1방은 대행대왕이나 왕후의 시신을 옮길 가마를 만드는 제작처인데, 이곳에서 궁인은 대여의 손잡이용 나무막대[長杠]나 판자[輪臺板] 등을 강화시키고자 쇠심줄[牛筋]을 어교(魚膠)로 붙였다. 이 기술은 장인이 활을 만들 때 대나무와 뽕나무를 강화하는 세부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3방은 무덤에 넣는 명기를 만드는 제작처인데, 궁인은 붉은 활[彤弓]을, 시인은 붉은 화살[彤矢]을 만들었다. 다음, 장인의 명칭은 궁장(弓匠)이나 시장(矢匠)보다 궁인이나 시인 및 전장(箭匠)을 적극 사용하였고, 그들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를 국가에서 마련해 주었다. 도구는 17세기에는 1가지였으나, 1724년에는 5가지로 늘어났으며, 1776년부터 10가지 이상의 것 일체를 준비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인들의 신분은 시기마다 바뀌었다. 17세기의 장인들은 서울에 거주하였다. 그러다 1673년 이후 18세기 관공장들은 군기시(軍器寺)나 상의원(尙衣院)과 같은 상설아문이나 훈련도감이나 수어청 등 5군문에서 근무하였다. 1785년 이후 19세기 장인들은 궁궐 안에 소재하던 내궁방(內弓房)에서 근무하던 내궁인이나 내시인이거나 사영(私營) 업자로 나뉘었다. 이들 장인 중 48년 내지 57년간 활동한 장인도 있어 주목된다.

영문 초록

Gungyin(bowyer) and Siyin(arrow maker) got special treatment in the Joseon Dynasty era. Bows and arrows were considered as major weapons to defend the country so that the two master craftsmen outnumbered other ones. The academic world, however, has not paid attention on bowyer and arrow maker. In this regard, this study analyzed on Uigwe(document) recording about craftsmen who worked for 217 Dogams(temporary government offices) in ritual eve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 temporary government office mobilized bowyers and arrow makers most at the King s funeral and wedding. The craftsmen performed their roles in two different workshops. In the first workshop, palanquin made to carry Queen or King s corpse were crafted. Gungyins attached ox tendon by fish glue to the chair to strengthen wooden sticks(長杠) or board(輪臺板) for handheld use. In the second workshop, burial goods were crafted. Bowyers and arrow makers made red bow and red arrow respectively in the workshop. Next, bowyer and arrow maker were called “Gungyin” and “Siyin”, rather than “Gungjang”, “Sijang” and “Jeonjang”. the government supplied raw materials and tools used by the craftsmen. In the 17th century, one tool was supplied but five tools were supplied in 1724. Since 1776, more than ten tools were ready. Lastly, their social position was changed by time. In the 17th century, the craftsmen resided in Seoul. Since 1673, official artisans worked at government offices or at military camp. Since 1785, they worked at workshop inside the palace or ran a privately owned workshop. There were some craftsmen who worked for 48 years to 57 years.

목차

Abstract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선 전기 법제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Ⅲ. 조선 후기 도감의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Ⅳ. 조선 후기 궁인과 시인의 시기별 변천
Ⅴ.결 론
참고문헌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장경희(Jang Kyung hee). (2016).조선 후기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연구 - 『의궤』의 분석을 중심으로 -. 조형디자인연구, 19 (1), 109-133

MLA

장경희(Jang Kyung hee). "조선 후기 궁인(弓人)과 시인(矢人) 연구 - 『의궤』의 분석을 중심으로 -." 조형디자인연구, 19.1(2016): 109-133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