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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退溪 父子와 科擧 試驗

이용수 312

영문명
Yi Hwang, his son an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발행기관
대동한문학회
저자명
李章佑(Lee, Jang Wu)
간행물 정보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第38輯, 47~78쪽, 전체 32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3.06.30
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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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일반적으로 퇴계는 벼슬할 뜻이 없어, 과거 시험도 보지 않으려고 하다가 20여 세가 넘은 뒤에 겨우 응시를 몇 차례 시도 하다가 실패를 하였지만 별로 괘념하지 않다가 30이 넘어서야 대과에 붙어 벼슬길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그가 15,6세부터 벌써 안동부사로 부임해온 그의 삼촌의 지도로 본격적인 과거 시험 준비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추측하여 보았다. 그 뒤 몇 해 동안 이미 도학 공부에도 상당히 몰입한 것으로 연보나 언행록에 기록하고만 있지만, 이러한 도학 공부와 아울러 과거 시험 준비도 병행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가 19세 때 서울에 올라가서, 봄에는 조광조가 신설한 현량과에 각 지방에서 선발된 후보자의 한 사람으로 뽑히어 서울에까지 올라가서 다시 선발하는 데는 탈락되었다가, 또 다시 그 해 가을에 시행한 “문과 별시”에 또 도전하여 초시에는 붙었으나, 그 다음 시험에는 탈락한 것으로 추정하여 보았다. 그가 이후에 벼슬길에 올라서 자주 사직을 한 원인 중의 하나도 바로 그 해 말로 끝난 조광조의 급격한 파멸[기묘사화]이 준 충격이 아마도 특별히 컸을 것으로 생각하여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충격 때문인지 그는 20대 초반에는 여러 번 다시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는 하였으나 자주 떨어지다가, 20대 후반부터는 다시 좀 원기를 회복하여 끝내는 30이 넘어 대과까지 붙은 것으로 보았다. 퇴계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530통이나 남아 있는데, 이 가서 자료를 가지고도 이퇴계의 아들에 대한 기대와 교육, 당시 거접에서의 생활상, 여러 차례의 응시와 실패, 결국은 음서를 통한 관로로의 진출 같은 양상을 매우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퇴계가 만약 벼슬하기를 아예 싫어하고, 그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다면, 자신의 아들을 보고도 처음부터 과거나, 벼슬을 꿈꾸지 말라고 하였음즉 하다. 그러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러한 예상과는 달리 그는 철저하게 과거를 통하여 벼슬길로 나아갈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퇴계의 아들 이준은 실제로 조용하게 공부를 하고 과거 시험을 준비할 만한 시간도 없었고, 또 기질도 나약하고 신체도 그렇게 건장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는 도산, 영주, 의령, 풍기 등지에 산재한 친가,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백여 명이 훨씬 넘는 많은 노비를 관리하기도 매우 어려웠고, 점점 명망을 얻어가는 부친의 여러 가지 시중을 드는데도 매우 바빴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아들을 보고 퇴계는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틈새를 이용하여 어디서나 공부를 하고, 좀 더 한가하여지면 산사에 들어가서 독서하든가, 좀 더 능률적으로 과거준비를 하기 위하여서는 거접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또 이퇴계는 서울에서 홍문관 교리, 성균관 대사성 같은 명예로운 문한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과거에 관한 최신 정보를 파악하여 아들에게 전달하고, 때로는 자기가 직접 아들의 과거 공부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아들이 급제하지 못하자, 음직을 찾아서 벼슬길에 오르게 한다. 그렇게 되자 실무에도 익숙하지만 문아한 기풍도 유지하는 온건한 삶을 살아갈 것을 바라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퇴계 본인이나 그 아들에게나, 아예 처음부터 과거나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고 속단하는 것은 사실과 크게 맞지 않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사람을 재는 거의 유일한 척도가 벼슬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또 당시 사회가 사대부 중심의 계층 사회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실정과 동떨어진 “신화”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유가의 특징은 현실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때에 맞게[時中]” 행동할 따름이다. 이퇴계야 말로 바로 그러한 인물의 표준이 아닌가 한다.

영문 초록

By the popular saying, the most famous Confucian scholar on Korean history, Toegye退溪 Yi Hwang李滉(1501∼1570) did not want to be a government official, so he disliked Gwage科擧,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But the writer emphasizes on the popular saying is not true, because the scholar also, beside the study of philosopical thought, took part in the study of preparing the Examination from his high teen age like any common boys of the gentlemen class of the time. On his 19 years old, this writer tries to point out the scholar’s applying for Hyunlyanggua賢良科, the special Examination for selecting Wise and Good young men, and fail to pass the last test of it at Seoul, even though many autographers, usually, erase the fact of his applying and fail on the year for keeping the great scholar’s good reputation and making an excuse for his later passing the goal at his 34 years old. The scholar, also, very eager to his son Yi Jun李寯(1523∼1583)’s preparing and applying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The son of the famous scholar was always busy for managing estate including a lot of farm lands and slaves, which were scattered in Yean禮安, Bongwha奉化, Youngju榮州, Pungsan豊山, Yiyong宜寧, and Goseung固城, and ran on errands for his noble father. Making use of the son’s spare time, the father asked him to try to put the Examination into effect. But it was very difficult to the week son. When the result was no good for getting the chance to be an officer through the Gwage, Yi Whang tried, according to the custom, to seek for his son another way to be an officer, which was called Eumsa蔭仕, getting post by the high ranking familial background. So it is not true that Yi Whang always disliked Gwage,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did not want to be an government officer. He was also a common young gentleman and a common strict father to eager keeping their familial social grade and situations.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퇴계의 과거 공부와 응시 기록
3. 퇴계의 아들 교육과 과거
4.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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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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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章佑(Lee, Jang Wu). (2013).退溪 父子와 科擧 試驗. 대동한문학, 38 , 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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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章佑(Lee, Jang Wu). "退溪 父子와 科擧 試驗." 대동한문학, 38.(2013): 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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