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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8세기 무신란(戊申亂) 진압과 비상 형정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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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The suppression of the Musin Rebellion (戊申亂) in the 18th century and the formation of the Extraordinary Criminal Procedure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정진혁(Jin Hyuk Jung)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제209집, 235~270쪽, 전체 36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12.31
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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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영조는 국왕으로서 당색에 휘둘리지 않는 공명정대한 정치를 표방하였고, 이를 탕평이라는 용어로 구체화하였다. 그는 형정이 ‘왕정’을 실현하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보았다. 이에 중요한 탕평정책 중 하나로 ‘삼가하고 삼가하며, 오직 형벌을 신중히 하였다’는 흠휼(欽恤)의 가치를 전면에 제기하였다. 그러나 영조 4년(1728) 조선 건국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내란이라고 할 수 있는 무신란이 발생하였다. 무신란은 ‘시급성’과 ‘행정부하’라는 요소에서 여타의 내란과는 궤를 달리하는 대형 사건이었으므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영조는 무신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례없는 초법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자백필수주의를 위반하여 결안을 생략한 처형을 확대하였고, 의금부 추국청이 역모 사건을 전담한다는 원칙을 벗어나 포도청에서도 역모 심문을 분담하게 하였다. 이는 기존 구조의 행정적 한계에서 비롯된 임시적인 ‘비상형정’이었다. 무신란은 국가의 장기간에 걸친 진압작업을 통해 수습되었지만 결코 일회적으로 종식될 속성의 사건이 아니었다. 영조 4년(1728) 이후 무신란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반영조운동을 펼친 무신여당(戊申餘黨) 사건이 영조 6~39년(1730~1763)까지 11회에 걸쳐 발생한 것은 그 결과이다. 이러한 체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무신란 때 활용된 ‘결안생략 처형’, ‘포도청·추국청 이중 국문’ 방식은 점차 정례화되어 갔다. 요약하자면, 영조는 흠휼을 중심으로 한 형사 제도 개혁을 추진하였고, 이를 『속대전』에 수록하여 영구적인 제도로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무신란·무신여당 처분에서 ‘결안생략 처형’, ‘포도청·추국청 이중 심문’과 같은 비상조치들이 재현될 수밖에 없었다. 영조 대는 ‘지향과 실천’, ‘이상과 현실’ 사이에 충돌이 존재했던 과도기적 시기였고, 형정 개혁의 구체적인 실현은 18세기 말 정조 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영문 초록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contradictory phenomenon of “criminal law reform” and the proliferation of “illegal measures” in the interrogation process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英祖). In particular, it focuses on the process by which the extraordinary criminal procedures(非常刑政) derived from the Musin rebellion(戊申亂) were established. Through his Tangpyeong(蕩平) policy and the Heumhyul(欽恤) criminal law reforms, King Yeongjo pursued the establishment of a king-centered order. However, the Musin Rebellion of 1728 was an unprecedented large-scale internal rebellion that required a strong government response. Even after the Musin rebellion, incidents involving the Musinyodang (戊申餘黨), who denied the legitimacy of King Yeongjo, continued. In these crisis situations, Yeongjo often used executions without formal sentencing, usually decided during his personal interrogations. He also used severe torture methods such as juri(周牢), which were effective in extracting confessions but led to an increase in interrogation deaths.

목차

1. 머리말
2. 무신란(戊申亂) 진압과 비상 형정의 시행
3. 무신여당(戊申餘黨) 창궐과 비상 형정의 고착화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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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혁(Jin Hyuk Jung). (2024).18세기 무신란(戊申亂) 진압과 비상 형정의 형성. 동방학지, (), 23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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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혁(Jin Hyuk Jung). "18세기 무신란(戊申亂) 진압과 비상 형정의 형성." 동방학지, (2024): 23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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