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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대만인의 반응과 경찰 이미지

이용수 1165

영문명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손준식(孫準植)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37집, 171~206쪽, 전체 36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0.10.30
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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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논문은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대만인의 반응과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대만사회의 피식민 경험이 어떠하였는지를 드러내보이고자 한 연구이다. 일본은 1895년 대만을 할양받았으나 대만인의 저항으로 1902년 비로소 식민통치의 기초를 확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일반 행정사무도 수행하는 ‘경찰정치’가 행해지게 되었고, 나아가 ‘理蕃’정책까지 집행하게 된다. 일차세계대전 이후 ‘내지연장주의’정책 하에서 경찰제도 개혁이 시도되었지만 그 직권이 워낙 크고 보갑을 지배하고 있어서 여전히 일반행정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황민화운동 실시 이후 전시체제로 진입하면서 경제통제와 전쟁동원을 위해 ‘경찰국가’의 색채는 더욱 농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일제시기 대만경찰은 시종식민통치의 첨병으로 식민정부를 대표하여 거의 모든 정책을 집행하고 간여하는 ‘경찰만능’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일본 점령 초기 대만 지주자산계층은 대부분 항일투쟁을 포기하고 內渡 내지 隱居하거나 신정권에 협력하는 길을 택하였고, 총독부의 포섭정책과 보갑제도 실시 후에는 식민행정의 보조역할을 맡거나 식민통치에 협력하게 된다. 또 자신의 자제를 신식학교에 입학시키거나 일본에 유학 보낸 결과 이들이 1920년대 이후 신흥엘리트로 성장하여 그 다수가 식민체제의 한 축을 맡게 된다. 한편 그 일부는 차별정책에 대한 다양한 저항을 시도하였는데, 그 중에는 경찰과 보갑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노력도 포함되어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특히 황민화운동 이후에는 동화와 협력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외 다른 저항 방법이 없었다. 노동자농민계층의 경우 일제 초기 무장투쟁에 가담한 良民이 기회주의적인협력자보다 많았지만 대다수는 점차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응한 것은 아니었고 식민통치가 확립되고 동화정책이 강화되면서 차츰 체제 내에 편입되어, 식민지 말기에 오면 침략전쟁에 동원되기에 이른다. 반면 경찰에 의한 위생환경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민중들이 위생관념을 내면화시키지 못한 점은 식민권력의 한계 및 근대와 전통의 길항관계를 보여준다. 한편 점령 초부터 산지의 자원을 개발 약탈하려는 식민당국에 저항하였던 원주민들은 총독부의 대대적인 토벌에 결국 굴복하였고, 이후 경찰에 의한 교화정책 하에 점차 동화되어갔다. 하지만 霧社사건과 高砂義勇隊 지원 동기를 통해 동화의 강한 흔적과 함께 강요된 동화의 허상을 동시에 보게 된다. 일제시기 신문과 소설에 묘사된 경찰의 모습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폭력적인 형상으로 특히 임산부와 어린아이에 대한 폭행에서 그 포학한 이미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 이런 폭력성은 대만인 巡査補의 경우 육친도 몰라보는 패륜과 이중적 처세로 인해 더 심한 비판과 풍자의 소재가 되었다. 폭력 다음으로 자주 거론되는 이미지는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언론에 많이 보도되지 않은 것은 비일비재한 일인데다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미지는 호색으로 소설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발생하였으니, 이처럼 직권을 남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경찰의 심리에는 피지배자를 멸시하는 오만함이 깔려 있었다. 대만경찰이 원성의 대상이 된 데는 그 권한이 너무 큰데 반해 자질이 보편적으로 나빴고 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지만,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선 요구가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그 부정적 이미지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소설 속 경찰 이미지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고 또 모든 경찰이 악행만을 일삼은 것은 아니지만, 경찰의 폭력과 탐욕, 호색과 오만한 이미지는 식민지 이후에도 대만인의 뇌리에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이런 ‘공포’ 이미지가 다음 세대에도 전승되어 피식민 경험의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영문 초록

本論文是通過分析台湾人對日本殖民統治的反應和警察的形象,揭示台湾社會的被殖民經驗是怎樣進行的硏究。 日本雖然早在1895年就接收了台湾,但是由于台湾人的抵抗,直到1902年才確立了殖民統治的基础。在這个過程中,台湾警察連一般行政事務都要执行的‘警察政治’得以樹立,接著他們還要負責执行‘理蕃’政策的任務。第一次世界大戰以后,在‘内地延長主義’政策下,雖試圖改革警察制度,但是由于賦予他的職權太大,幷支配着保甲,故无可避免地依旧對一般行政進行深入的參与。更甚者,皇民化運動實施以后,進入戰時体制,爲了經濟統制和戰爭動員,‘警察國家’的色彩愈加濃厚了。像這樣,日治時期台湾警察作爲殖民統治的尖兵,具有代表殖民政府執行和干預几乎所有政策的‘警察万能’的特点。 日本占領初期,台湾地主資産階級大部分拋棄抗日鬪爭,選擇內渡ㆍ隱居或者与新政權合作的道路,總督府的籠絡政策和保甲制度實施以后,擔任輔助殖民行政的角色或者与殖民統治進行合作。另外把自己的子女送進新式學校讀書或者送往日本留學的結果是,這些子女在1920年代以后作爲新興精英成長起來,大多數成爲了承担殖民体制的一个軸。另一方面,新興精英中部分人士對差別政策,嘗試進行了各种抵抗,包括要求改善警察和保甲制度的努力在內。但是,到了1930年代,尤其在皇民化運動以后,除了拒絶或者消極地回應同化和協力外,沒有其他的抗爭方法了。工農階級的情況是,雖然日治初期加入武裝斗爭的良民比投机的協作者更多,但是大多數也漸漸地接受了日本的支配。不過幷不是一開始就順應了,而是伴隨着殖民統治的確立和同化政策的强化,逐步地被編入了体制內,到日治末期,遂被侵略戰爭動員起來。相反,殖民当局雖做了依靠警察改善衛生环境的努力,卻无法使大多數民衆体會衛生觀念,這一点揭示出殖民權力的界限及近代和傳統的拮抗關系。另外,占領初期開始,原住民曾經反抗過企圖開發掠奪山地資源的殖民当局,但在總督府的大力討伐下最終屈服了,之后在依靠警察的教化政策下,逐漸同化了。但是,通過霧社事件和高砂義勇隊的志願動机,同時看得到了同化的深刻痕跡和强迫同化的虛像。 日治時期報紙和小說里描寫的警察形象中最多出現的是暴力形象,尤其是對孕婦和孩子的暴行,把其暴虐的形象揭露无遺。再者,台湾人巡查補的暴力性,由于連至親都不認的悖倫和截然不同的待人態度,而成爲了更深刻的批判和諷刺素材。暴力之外經常言及的形象是貪欲的寫照,但有關這方面的報道並不多的原因,恐怕因爲這是司空見慣且沒有確實的証据。還有另外的形象是好色,不僅在小說里出現,而且在現實中也經常發生,在像這樣濫用職權滿足私欲的警察心理,存在着蔑視被支配者的傲慢。台湾警察成爲怨聲載道的對象,除了其權限是非常大,而其素質是普遍不好,且当局不能進行正常監督之外,由于關于此問題的改善要求得不到反映,其坏的形象也終究得不到改變。雖然小說中警察形象多少帶有夸張的一面,幷且不是所有的警察都只做惡行,警察的暴力和貪欲,好色和傲慢的形象還是殖民地以后也在台湾人的腦海里久久揮之不去。這樣“恐怖”的形象在下一代也被傳承,作爲被殖民經驗的創傷這一点,可以知道和韓國幷沒有大的差异。

목차

Ⅰ. 서론
Ⅱ. 일제의 식민통치와 대만인의 반응
Ⅲ. 식민지 경찰에 대한 대만인의 이미지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中文摘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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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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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식(孫準植). (2010).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대만인의 반응과 경찰 이미지. 역사문화연구, 37 ,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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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식(孫準植).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대만인의 반응과 경찰 이미지." 역사문화연구, 37.(2010):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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