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이용수 51
- 영문명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저자명
- 徐榮敎
- 간행물 정보
- 『동국사학』제57권, 327~352쪽, 전체 2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4.12.30
5,920원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국문 초록
661년 7월에 소정방이 대동강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마읍산을 점
령한 후 8월에 평양성을 포위했다. 이어 9월에 결빙된 압록강을 돌파한
계필하력의 유목기병군단은 평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하력에게 철수명령
이 떨어졌다. 고구려가 거란 제부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회
흘이 본거지에서 철륵의 반란을 주동했다.
그해 말 당군은 철륵을 추격하다가 휘하의 1만 3200명의 병력을 상실
했고, 662년 2월 고립된 소정방도 평양성에서 수만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철군했다. 662년 백제 웅진성에 주둔한 유인궤 등에게 철수를 권유하는
당고종의 칙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당고종의 의지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659년 장손무기가 제거
되고 측천무후가 등장했다. 그녀는 조정 내에서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시키
기 위해 태산 봉선의례를 촉구했다. 662년 초 당이 고구려와 철륵에게 패
배했고, 연이은 패전 상황은 측천무후가 태산 봉선을 밀어붙이는 기회를
주었다. 662년 10월 봉선의례 발표가 있었다.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당의 평양성 포위와 고구려의 초원 공작
Ⅲ. 평양성 撤軍과 鐵勒문제 봉합
Ⅳ. 泰山 封禪 詔書
Ⅴ.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五臺山 史庫本 실록의 특징과 학술적 가치
- 조선 시기 외사고의 변천과 오대산사고
- 唐高宗 百濟撤兵 勅書의 背景
- 三國統一期 新羅의 北界 確定 問題
- 러시아 연해주지역 한국독립운동사적지 현황과 활용방안
- 五臺山史庫本 實錄의 還收에 관하여
- 개항 초기(1876~1880) 釜山駐在 日本管理官의 파견·활동과 그 특징
- “거대함”에 대한 미국인의 편집증
- 조선말 成均館의 興學策
- 明使 姜曰廣의 朝鮮 使行
- 기즈(Guise)家의 호전적 가톨릭주의
- 漢의 沃沮 지배와 토착 지배층의 동향
- 미국의 우생학(eugenics)과 사회개혁, 1880년대~1920년대
- 1960년대 ⌈사상계⌋의 경제 담론과 주체 형성 기획
- 唐代 都督府와 州의 關係에 대한 試論
- 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守直僧徒 운영
- 五臺山史庫의 立地와 四溟堂
- ⌈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 普照?澄과 明州 大梅法常의 法嗣 迦智
- 19세기 전반 조선 지식인의 대외인식에 관한 一考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