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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

이용수 33

영문명
Nadang Allied Forces and Baekje War
발행기관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저자명
이재준(Jae-joon Lee)
간행물 정보
『중원문화연구』제33집, 47~72쪽, 전체 26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12.31
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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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는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을 군사적으로 검토한 연구다. 검토 결과 당나라 1,900여 척의 배와 13만 대군은 후속하던 유인궤의 군량선 침몰로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백제 수군 창고를 공격하여 식량을 조달하고 연안 항해로 식수를 조달하였다. 그리고 공주 방향 내륙으로 기동하는 양공작전을 실시하였다. 또한 보령지역에서 가림도 행군총관 시철위를 조공부대로 가림성 방향으로 투입하였다. 이후 본대가 서천-군산 양안을 확보한 후 소정방은 서천 앞바다가 아닌 금강의 석성천 일대로 상륙하였으며, 신라군과당군의 합류는 강경 일대가 아닌 석성면 현내리 일대였다. 신라 5만 군사는 당나라의 일방적인 지시에 의거 경기도 이천까지 기동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백제군을 속이는 양동작전이 되었다. 백제는 신라군의 남천정 기동에 전쟁을 감지하고 병력을 동원하였다. 동원된 병력으로 누구를 먼저 칠 것인가 어전회의를 하던 중 신라군과 당군이 덕물도에서 회합 후 당이 백제 수군 창고를 공격하자 북방에서 공격해 오는 것으로 오인하고 주력부대를 투입시켰다. 주력부대를 조기 투입 시킨 백제는 황산벌 전투에 5,000명 밖에 보낼 수 없었으며 7월 9일 4번 싸워 이겼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같은 날 벌어진 당군과 웅진구[기벌포] 전투장소는 서천 일대가 아닌 석성천 일대였다. 이 두 전투 후 양군이 압박해 오자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신하였으나 웅진방령의 반란으로 사비도성으로 끌려와 7월 18일 항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북방에 투입되었던 백제군은 충남 예산 임존성에서 거병하여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이어갔다. 백제 부흥전쟁은 당군과 신라군 17,000명이 점령한 사비도성 즉 웅진도독부를 2회에 거쳐 직접 공격하였으며, 병력이 부족하게 되자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는 차단작전을 662년 8월까지 실시하였다. 하지만 부흥군 지휘부의 내분을 계기로 당과 신라가 총공세로 돌아서자 백제 부흥군도 고구려와 왜에 지원을 요청하여 백제-왜가 연합한 연합전략을 수행하였다. 결국 백제는 백강구 전투에서 대패 후 주류성과 임존성이 무너질 때까지 3년 4개월간 부흥전쟁을 지속하였으며 663년 11월 최종적으로 멸망하였다.

영문 초록

This study seeks a military review of the war between the Silla-Tang allied forces and Baekje. From June 21 to July 10, 660, the Tang army attacked the Baekje naval warehouse to secure insufficient food. Afterwards, it was misguidedly maneuvered toward Gongju. Afterwards, while sailing off the coast, the tribute unit was maneuvered in the direction of Garimseong Fortress in the Boryeong area. Sojeongbang, the main force, landed in the area of Seokseongcheon, not in the sea off Seocheon. The Tang and Silla armies joined from Hyeonnae-ri, Seokseong-myeon, not from Ganggyeong. Silla's 50,000 troops moved to Icheon, Gyeonggi-do, under the direction of the Tang Dynasty. As a result, this was a double operation that the Baekje army deceived. Baekje confirmed the movement of the Silla army's Namcheonjeong Pavilion and mobilized troops. When the Tang army attacked the Baekje naval warehouse, they mistook it as an attack from the north and sent their main forces north. Therefore, Baekje sent 5,000 troops to the battle of Hwangsan Beol and lost. The Tang army fought and lost in Seokseongcheon. When the Nadang Allied Forces attacked, King Uija fled to Woongjin Castle. However, due to Woongjin Castle's rebellion, King Uija surrendered. Baekje surrendered, but the Baekje army, which was sent to the north, continued the Baekje Revival War for three years and four months. The battle was carried out until November 662, the second and third direct attacks by Baekje's Ministry. When the Nadang army came to the offensive, they united with the Japanese and greatly lost the Battle of Baekgang-gu, and finally collapsed in November 663.

목차

Ⅰ. 머리말
Ⅱ. 신라-당 연합군의 백제 침공전략
Ⅲ. 백제군의 대응과 병력운용
Ⅳ. 황산벌 전투와 기벌포 전투
Ⅴ. 백제 부흥군의 항전
Ⅵ.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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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Jae-joon Lee). (2024).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 중원문화연구, (), 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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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Jae-joon Lee).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 중원문화연구, (2024): 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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