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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高句麗 長安城의 築城過程과 遷都의 背景

이용수 695

영문명
The Background of Removal of the Capital to ‘Jangansung(長安城)’, and its Process of Construction, in Koguryo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김희선(Kim, Hee-sun)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22집, 3~31쪽, 전체 29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5.06.30
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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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고구려는 장수왕 15년(427)의 평양천도 이후에도 새로운 도성을 축성하여 평원왕 28년(586)에 長安城으로 천도하였다. 그간 장안성 천도의 배경으로는 신라의 北上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장안성의 축성과정을 살펴보면 42 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려 완성되었으며 內城과 外城의 축조시기 또한 552년의 장안성의 축조 개시로부터 상당한 시간적 공백이 남는다. 더구나 장안성은 성곽의 형태상 초축 당시부터 羅城(外城)을 구축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짐작되며, 나 성 안에는 條坊制를 시행함으로써 일정한 구획을 갖춘 계획적인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또한 고구려가 北魏의 도성제의 영향을 받아 장안성 천도 논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나성의 축조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여기에 북한에서 행해진 발굴조사에 의하면 대성산 일대의 안학궁지 주변에서도 도시구획의 흔적이 확인되어 장안성으로의 천도 논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나성의 축조와 계획적인 시가지의 건설이 계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장안성으로의 천도는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 의해 급격하게 추진된 것이 아니라 축성 초기부터 일반 거주민을 보호할 나성과 계획적인 도시구획을 염두에 두고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양원왕대의 정치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원왕은 자신의 즉위를 반대한 ‘細群系’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즉위하였고 즉위 초반 일시적이나마 정국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자신의 친위세력인 ‘麤群系’를 중심으로 정계를 개편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장안성으로의 천도는 그러한 의도로 진행된 일종의 정국전환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장안성의 축조가 시작된 후 얼마안있어 야기된 정국불안으로 인해 新都의 건설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사실은 장안성의 초축시기와 내 외성의 축조시기 사이의 시간적인 공백을 쉽게 설명해 준다. 결국 장안성의 본격적인 축성사업은 평원왕대의 대내외적인 안정과 지배체제의 정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동시기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적지 않은 시련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간 신라의 북상이 장안성 천도의 주요 배경으로 거론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새로운 도성 건설을 촉구하였던 신라와 돌궐의 위협은 심각한 상황으로 진전될 정도로 지속적인 것은 아니었다. 568년의 比列忽州의 폐치 이후 신라의 州치소는 전반적으로 남쪽으로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돌궐의 팽창세 또한 저지되어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야기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隋의 출현이었다. 고구려는 隋의 건국 이후 여러 차례 조공 사절을 파견하며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앞으로 닥칠지 모를 수와의 대결에 대비하고 있었다. 新都가 완전히 완공되기전 단행된 장안성으로의 천도는 수의 세력확장에 대비한 방비책의 일환으로써 서둘러 추진된 것으로 보이며, 수의 요서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장안성의 마무리 공사 또한 영양왕 4년(593)에는 완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문 초록

The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Jangansung(長安城) in 586. Up to the present, it is presumed that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Jangansung due to northward advance of Shilla. But, there have been limitations in confirming. It took as long as 42 years to construct Jangansung. It has been considerable vaccum between construction of Naesung(內城) and constructoin of Jangansung, in the same way as construction of Weisung(外城). It seems that Koguryo made a plan for construction of Weisung from the beginning, because Jobangge(條坊制) was put in operation and systematic town was constructed in Weisung. Furthemore, it seems that Koguryo was affected by the capital system of Pukwi(北魏) in construction of Jangansung. There were Weisung in Nakyangsung(洛陽城) of Pukwi, and Jobangge was put in operation, too.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that the removal of the capital to Jangansung was not promoted suddenly due to northward advance of Shilla, but promoted by long-term plans. It relation to that, the political situation in king of Yangwon are norticed. The king of Yangwon stablized a political situation, since he came to the throne. At that time, he get rid of a political oppernent, and he reorganized a political circles around his supporter. It seems that the removal of the capital to Jangansung was promoted during a political reorganization. But, the construction of Jangansung was not proceeded normally due to a political crisis. Finally, the construction of Jangansung was completed in king of Pyoungwon. By the way, at that time Koguryo went through an external ordeal. There were the northward advance of Shilla. The Turks suppressed Koguryo, too. But, the threat of Shilla and Turks were not continued to the serious situation. The Shilla retreated to the south, and the suppression of Truks was obstructed. But, the international situation was changed, since Sui(隋) was established. The Koguryo prepared confrontation with Sui in advance. At that time, the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Jangansung, but for all that Jangansung was not completed perfectly. It can be inferred that Koguryo moved its capital to Jangansung in order to prepare confrontation with Sui. Jangansung was completed in 593.

목차

Ⅰ. 머리말
Ⅱ. 長安城의 축성과정
Ⅲ. 長安城 천도의 배경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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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Kim, Hee-sun). (2005).高句麗 長安城의 築城過程과 遷都의 背景. 역사문화연구, 22 ,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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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Kim, Hee-sun). "高句麗 長安城의 築城過程과 遷都의 背景." 역사문화연구, 22.(2005):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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