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5~6세기 왜의 백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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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Background of Wa's attempt to provide economic support to Baekje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 발행기관
- 한국고대학회
- 저자명
- 우재병(Jae-Pyoung Woo)
- 간행물 정보
- 『선사와 고대』76輯, 245~270쪽, 전체 2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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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5세기 후엽~6세기 전엽경이 되면, 백제의 수장묘와 해안제사유적에서는 백제인과 더불어 왜인들에 의한 의례행위도 추가된 양상이 확인된다. 백제 서남부지역 수장묘에는 5세기 후엽경부터 분구를 장식하기 위한 왜양식 원통형토기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왜양식은 분명하지만 재지공인에 의해 제작된 사례이다. 이렇게 원통하니와(圓筒埴輪)로 수장묘를 장식하는 왜양식 무덤 문화가 백제 수장묘에 부분적으로 재현된 것은 참석한 왜 사신·상인을 의식한 행위로 보인다. 즉 이 행위는 의도된 친왜정책의 표현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왜 조문사 뿐만 아니라 이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조문사에게도 백제의 친왜정책을 알리는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들 왜양식 원통형토기는 백제와 왜 사이의 긴밀한 정치적 연대를 과시하기 위해 연출된 기념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세기 후엽 무령왕 시기가 되면 백제 서남부지역 수장묘에는 왜양식 무덤 문화의 추가 현상이 목격된다. 전방후원분이라는 왜의 최고급 무덤 양식이 일부 수장묘 무덤양식으로 채용된다. 더욱이 왜에서 수입한 금송 목재로 만든 목관이 무령왕릉 뿐만 아니라 중앙 고위급 무덤, 백제 서남부지역 수장묘에도 사용되는 양상이 목격된다. 즉 5세기 후엽에 비하여 6세기 전엽이 되면, 백제와 왜 사이의 강화된 외교관계를 시사하는 고고학적 자료는 명료하게 증가한다.
왜에서도 6세기 전엽 게이타이(繼體) 정권기가 되면, 백제양식 횡혈식석실이 중앙지역 수장묘 무덤 양식으로 채용된다. 더욱이 이들 수장묘에서는 금동제 장식대도, 금제 귀걸이 등 수입된 백제산 위신재가 부장된 흔적이 종종 확인된다.
양국 사이에는 상대국의 무덤 문화를 채용하고, 상대국 특산의 위신재를 수입하는 등, 이 시기 양국간 동맹관계가 매우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행위를 통하여 백제와 왜는 고구려를 비롯하여 주변국, 그리고 자국의 수장층에게 양국간의 긴밀한 외교관계를 명료히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양국이 상호 위신재를 매수·판매하는 과정을 관찰하여보면 특이한 점이 관찰된다. 왜 측이 백제산 고급 위신재 구입에 더 많은 경제적 비용을 투입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이것은 왜가 고구려·신라 측의 견제를 피하면서 백제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었다고 추정된다. 왜는 낙동강 하구지역에 위치하는 금관가야의 국제적인 교역항에서 이루어진 고구려·신라 측의 전략무기 통제를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왜는 용병과 철제 무기, 갑옷을 왜 교역선에 싣고 백제로 향하는 전략은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산 금송 목재 등 특산물을 싣고 백제로 수출한 후, 금동제 장식대도, 금제 귀걸이 등 백제산 위신재, 특산물을 왜로 수입하는 전략을 실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상호적인 교역으로 포장한 백제와 왜 사이의 해상 교역은 고구려·신라 측이 통제하는 금관가야의 국제적인 교역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 시기 백제와 왜 사이의 불평등한 해상교역은, 왜가 고구려·신라 측의 견제를 피하면서 직접적인 군사지원이 아닌 경제적인 방식으로 백제를 지원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문 초록
From the latter half of the 5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there are cases in Baekje that imitate the Wa's tomb style. On the contrary, in Wa, there are cases where Baekje's tomb style is imitated. For example, in the latter half of the 5th century, some of the chief tombs in the southwest region of Baekje were decorated with cylindrical haniwa. In addition, in the early 6th century, some of the tombs of heads of the southwestern regions of Baekje were constructed with Keyhole tombs. During this period, wooden coffins made of Japanese umbrella pine imported from Wa also appear in the tombs of king Muryeong and chiefs of Baekje.
In the early 6th century, Baekje-style horizontal stone chambers were built in the tombs of the heads of the central region of Wa. In particular, inside this horizontal stone chamber, prestige goods imported from Baekje, such as gilt-bronze swords and gold earring, are also buried.
These phenomena, which appeared at the same time between the two countries, suggest a close alliance between the two countries. Moreover, the export of expensive prestige goods from Baekje to Wa brought many economic benefits to Baekje. The unequal tr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was an attempt to avoid checks by Goguryeo and Silla. This seems to have been Wa's trade strategy to support Baekje. At that time, there was trade control by Goguryeo and Silla at the international port of Geumgwan Gaya. Therefore, Wa attempted economic support instead of military support to Baekje. The purpose of Wa's economic support includes providing Baekje with the necessary expenses for the war against Goguryeo.
목차
Ⅰ. 서언
Ⅱ. 5세기 후엽 백제 서남부지역 수장묘에 원통하니와(圓筒埴輪)가 채용된 배경
Ⅲ. 6세기 전엽 왜양식 전방후원분이 백제 서남부지역 수장묘에 채용된 배경
Ⅳ. 6세기 전엽 백제에 대한 왜의 경제적 지원정책강화 배경
Ⅴ. 결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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