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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訒齋 崔晛의 記文 연구

이용수 10

영문명
A Study on the Record Writingsof Injae Choi Hyun(齋訒 崔晛)
발행기관
대동한문학회
저자명
정지아(Jeong, jiah)
간행물 정보
『대동한문학』第78輯, 59~88쪽, 전체 30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03.30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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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訒齋 崔晛(1563~1640)은 조선 중기의 관료이자 문학가로, 그가 남긴 많은 저술이 문집에 남아있다. 우선 최현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검토해보면, 대부분 漢詩, 疏箚, 한글가사 <龍蛇吟>과 <明月吟>, 소설 <琴生異門錄>, 사행기록인 <朝天日錄>을 대상으로 인재의 삶과 정치, 사상, 학문의 세계를 고찰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재의 정치 활동과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대체로 우국애민의 경세가적인 면모가 부각되어 있다. 최근 2023년에는 구미성리학역사관에서 인재를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면서 연계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인재를 실용실천 우국애민의 경세가로 재조명하였다. 인재의 정치적 입지, 역사적 배경, 생애와 이력 등을 감안하면 인재는 실용실천 우국애민의 경세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재가 학계에 알려진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문학 방면에서 그에 대한 연구는 다소 미진한 편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인재의 작품 중에서도 아직 제대로 연구되어진 적이 없는 記文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訒齋先生文集』 권10에 총 7편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기문들을 개관하여 소개하고, 당대 能文者로서의 글재주와 그의 文以載道적 문학관의 실상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인재의 기문은 모두 7편으로, <金山鄕射堂記>와 <聞韶縣桐木記>는 자발적으로 지은 글이다. <棄老齋記>와 <晩翠堂記>는 건축물의 주인인 조윤지와 권산립의 청탁으로 지은 글이고, <金陵館重建記>는 鄭維翰의 청탁을 받아 지은 글이다. <洛山山水屛記>는 낙산을 유람하고 난 후 허계가 만든 장첩에 간단히 기록한 것이고, <赤裳山寶鏡寺香爐峯記>는 덕웅선사의 청탁으로 적상산성의 옛 궁궐터에서 발굴된 청동 거울과 향로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인재의 기문 가운데 유람을 하고 지은 산수유기는 한 편도 남아 있지 않은데, 여타 작가의 기문에서 건물기와 더불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인재는 틈이 날 때면 주왕산, 망양정, 금오산, 월출산 등을 유람하였고, 이매연에서 뱃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유람 후 남긴 한시로는 월출산을 유람하고 지은 <贈道行上人>이 있고, 금강산을 유람한 이후에 지리산 승려 성은을 만나 금강산 유람에 대한 감회가 일어나 지은 시 <贈智異山僧性>이 있다. 인재는 유람에 대한 흥취를 산수유기 보다는 주로 시로 남겼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당대 문인 유람자들에 비해 산수유기 작품을 남기지 않은 것은 기문을 ‘기록보존’의 측면으로 이해한 그의 실용주의적 성격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金山鄕射堂記>와 <聞韶縣桐木記>에는 古禮와 聖人의 도를 회복하고자 하는 勸戒와 임진왜란 후 복원에 대한 염원이 나타나 있고, <金陵館重建記>, <棄老齋記>, <晩翠堂記>에는 청탁자와의 소통과 공감의식이 문답구조로 나타나 있다. <洛山山水屛記>와 <赤裳山寶鏡寺香爐峯記>에는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기록보존의식이 나타나 있다. 인재는 기문을 사실의 기록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권계와 염원을 드러내고, 청탁을 받아 지은 글에서는 청탁자와의 소통과 공감의식을 바탕으로 능문자의 문재를 발휘하였으며, 후대에 전달하고 싶은 정보는 기록보존의식을 가지고 객관적 정보를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인재의 문이재도적, 실용주의적 문학관이 기문에서도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문 초록

Injae Choi Hyun(訒齋 崔晛, 1563~1640) was a mid-Joseon Dynasty bureaucrat and literary figure, and many of his writings remain in literary collections. First of all, if we review the existing studies on Choi Hyun, it is found that most of them examined the world of life, politics, thought, and academia of Injae focusing on Chinese poems(漢詩), Socha(疏箚), Hangeul lyrics and , the novel and the record of the envoy's journey . These studies have a lot to do with the political activities of Injae, and generally highlight his statesman aspect of patriotism (worrying about the country and loving the people). Recently, in 2023, a related academic conference was held at the Gumi Neo-Confucianism History Museum with a special exhibition on the theme of Injae, and here again, Injae was reexamined as a statesman of practical practice and patriotism. Considering the political position, historical background, life and history of Injae, it is clear that Injae is a statesman of practical practice and patriotism. However, even though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Injae was known in academia, research on him in the field of literature is still somewhat lacking. Therefore, in this paper, we will first look at the record writings(記文), which has not yet been properly studied among the works of Injae. A total of 7 record writings are included in Volume 10 of 『Collected Writings of Teacher Injae(訒齋先生文集)』, and I will introduce these record writings in an overview and introduce them, and examine how his writing talent as a skilled writer of the time and the reality of his literary view of containing Tao through sentences(文以載道) are embodied. There are a total of seven essays in Injae’s record writings, and and were written voluntarily by him. and were written at the request of Cho Yun-ji and Kwon San-lip, the owners of the buildings, and was written at the request of Jung Yu-han(鄭維翰). The is a brief record written in a book made by Huh Gye after touring Mt. Naksan, and the is a record of bronze mirrors and incense burners excavated from the old palace site of Jeoksang Mountain Fortress at the request of Zen Master Deokwoong. Among Injae’s record writings, not a single piece of Sansuyuki written after traveling has survived, which is different from the fact that in other writers' record writings, it occupies the largest proportion along with the records of buildings. In his spare time, he toured Mt. Juwangsan, Mang- yangjeong, Mt. Geumosan, and Mt. Wolsansan, and also went boating at Imaeyeon. Some of the Chinese poems left behind after the tour include the written after the tour of Mt. Wolsansan, and the poem which was written about an impression of the sightseeing of Mt. Kumgangsan after meeting the monk Seong-eun of Mt. Jirisan following a tour of Mt. Kumgangsan. It can be seen that Injae left the excitement of sightseeing mainly in poetry rather than in the Sansuyuki. It is presumed that the reason he did not leave behind any Sansuyuki works compared to other literary travelers of his time was because of his pragmatic nature, where he understood the record writings in terms of ‘record preservation.’ and show the recommendation and discipline(勸戒) seeking to restore ancient rites and the ways of saints, and a wish for restoration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while ,

목차

1. 머리말
2. 訒齋의 記文 개관
3. 記文의 특징
4.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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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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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Jeong, jiah). (2024).訒齋 崔晛의 記文 연구. 대동한문학, (), 59-88

MLA

정지아(Jeong, jiah). "訒齋 崔晛의 記文 연구." 대동한문학, (2024): 5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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