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조선 왕실 순회묘(順懷廟) 의례의 형성과 특징

이용수 2

영문명
Sunhoimyo Ritual Formation and Character of the Joseon Royal Family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권용란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제203집, 137~158쪽, 전체 22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06.30
5,44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순회세자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과 정비 인순왕후 심씨의 장자로 태어나 7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1세 때 공회빈 윤씨(?~1592)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13세의 나이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당시에는 후사 없이 죽은 세자의 제사를 국가가 담당한 전례도 법규도 없었다. 명종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순회세자를 국가에서 제사하는 것을 법규로 제정하고자 하였고 사당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된다. 순회세자의 죽음은 살아생전 왕위에 오를 것이 예정된 ‘세자’라는 점에서 다른 왕손들의 죽음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 그러나 당시 세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길례(吉禮)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유교의 죽음관과 제례의 원칙으로 볼 때, 순회묘 의례는 주체와 대상이 적합하지 못한 음사(淫祀)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사후의 순회세자가 국가의 관리하에서 길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명분과 배경을 살펴보고, 그 특징 및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 글은 순회세자의 사당이 형성된 배경을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명종이 공식적인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사당을 마련하고 의례를 행하는 것을 영구히 법규로 삼고자 함을 공표하고 실천한 것이다. 왕의 언행은 의례에 공식성을 부여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둘째, 명종 당시까지 순회세자와 비슷한 사례도 해당 법규도 없었던 상황으로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의례가 생성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순회묘 의례는 왕실 조상보다는 낮았지만 일반 사대부와 왕손들보다는 높은 위격이었다. 축문이 없어서 의례 주체가 국가와 왕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후사가 개인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였다. 순회묘 의례의 위상을 세밀하게 본다면, 국가에서 관리는 하되 아직은 국가의례로 삼아진 것은 아닌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식성을 갖춘 국가 의례에 준하는 준정사(準正祀, semi-proper ritual)의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순회묘 의례의 의미는 생전과 동일한 ‘세자’의 신분을 사후에도 유지했다는 것과 이후 동일한 사례의 전례이자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왕대의 무후 ‘세자묘’ 의례의 독립된 계보를 형성하는 첫 사례로 삼아졌다. 이 글은 세자의 공적 지위와 자식의 죽음이라는 슬픔이 유교 의례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고 정착되었는지를 순회묘 의례의 형성과정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영문 초록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ause and background of the posthumous crown prince being the subject of ritual under the management of the nation through 'Sunhoimyo(順懷廟) Ritual' and to clarify its characteristics and meaning. Sunhoiseja(順懷世子, 1551~1563), son of king MyeongJong(明宗, 1534~1563·1545~1567), who was the Crown Prince but has died early and childless, became the object of worship. Originally, if the crown prince died, neither the nation nor the king could administer the his ritual. This paper presented two backgrounds for the formation of rituals. First, King MyeongJong announced and practiced that he wanted to permanently establish a shrine and practice rituals without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formal discussion and agreement. The second is circumstance of no models and laws about this. Because of this, The expression of private emotion through the king’s ritual action allows the rediscovery and the reinterpretation of various Confucianism ideas other than those which existed as dominant principles. This ritual's characteristic is that worships as the Crown Prince as he was alive. Through the formation of this ritual, an lineage of the childless Crown Prince within the royal-family was formed.

목차

1. 머리말
2. 유교의 죽음관과 무후(無後) 왕세자
3. 순회묘(順懷廟)의 건립
4. 순회묘 의례의 특징과 의미
5.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권용란. (2023).조선 왕실 순회묘(順懷廟) 의례의 형성과 특징. 동방학지, (), 137-158

MLA

권용란. "조선 왕실 순회묘(順懷廟) 의례의 형성과 특징." 동방학지, (2023): 137-158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