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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妓生および芸者の芸能教育の比較

이용수 58

영문명
A Comparative Study on Arts Education of Gisaeng and Geisha
발행기관
한국문화융합학회
저자명
金美英(김미영)
간행물 정보
『문화와융합』제38권 4호, 11~49쪽, 전체 39쪽
주제분류
복합학 > 학제간연구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6.08.30
7,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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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近代妓生を研究する上で券番は研究の範疇で必ず論議されるべき部分である。 近代妓生は券番に所属され、芸能教育と妓業ができる唯一の機関であったのである。券番は元々日本の芸者に対する制度で、日本植民地時代に妓生に導入された制度であった。 したがって、韓國の券番を研究するためには日本の券番制度と比較研究の必要性が ある。 従来、妓生と芸者の芸能教育の研究では芸能教育に対する内容が全体ではなく、一部分のみ研究されてきた。全般的な内容に各国の独自の特性や相互の影響について知るのには不十分であった。また、妓生と芸者の芸能教育を比較した研究はあまり見当たらない。 そして、朝鮮王朝時代の妓生の芸能教育は教坊で担当していたが、日本植民地化によって日本の券番制度が導入され、妓生の芸能教育は券番で担当するようになった。 芸能教育について比較することによって、帝国日本が植民地朝鮮に与えた影響及び、各国の独自の特性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本稿の目的である。 妓生と芸者は社会的に最高の境地の芸の能力を要求されており、その目的で芸能学校が存在し、芸能的能力を向上させるため、毎日厳しい教育を受けた。 日本植民地時代の券番は、朝鮮王朝時代の妓生教育機関である教坊と日本の券番制度がミックスされた新しい性格を持った券番と言える。

영문 초록

근대기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권번은 연구의 범주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근대기생은 권번에 소속되어 예능교육과 기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권번은 원래 일본 게이샤에 대한 제도로써 일본 식민지시대에 한국기생에 도입된 제도이다. 따라서 한국권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일본권번제도와 비교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선행연구에서는 한국권번이 일본권번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전제하지만, 한국권번과 일본권번을 비교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화의 한국권번이 일본권번의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특히 한국권번에서 이루어진 예능교육에 대해서 밝히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생의 예능교육과 게이샤의 예능교육을 비교 고찰하였다. 조선왕조시대의 기생은 조선왕조시대의 음악기관이었던 장악원에 소속된 관기로서 궁중의 여악을 담당하고 있었다. 고려의 전통을 이은 전악서 (典樂署), 아악서 (雅樂署), 관습도감 (慣習都監)과 조선초 설치된 악학(樂學)에서 담당하다가 1457년(세조 3) 전악서와 아악서를 장악서(掌樂署), 악학과 관습도감을 악학도감(樂學都監)으로 개편하여 1466년 장악서가 악학도감의 업무를흡수했고, 궁중음악 및 춤에 대한 행정 및 연주활동 등이 일원화되면서 1470년(성종 1) 이전에 장악원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음악의 교육과 연주를 담당한 체아직(遞兒職) 녹관(祿官)으로 전악(典樂) 1명, 부전악(副典樂) 2명, 전율(典律) 2명, 부전율(副典律) 2명, 전음(典音) 2명, 부전음 4명, 전성(典聲) 10명, 부전성 23명을 두었다. 이중 체아직해당자는 악사(樂師) 2명, 악공(樂工) 26명, 악생(樂生) 14명, 관현맹(管絃盲) 4명 등이었다. 교방은 지방 관청에 부속되어 장악원과 같은 역할로 기생 교육을 담당했다. 교방의 조직은 도상-행수기생-기생-동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도상과 행수기생으로부터 기생 예능교육까지 행해지고 있었다. 1905년 궁중의 여악이 폐지되고, 1908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국가소속에서 민간인으로 전환되었다. 일본식민지시대의 기생교육은 조합과 권번으로 1909년의 조양구락부의 설립하여 기생 교육 부속기관으로 다동조합을 설립함으로써 한국 최초 조합이 생겨났고, 이후 평양, 경성 등의 각 지방에 권번들이 설립되었다. 당시의 권번조직은 크게 총무부분문과 교육부문으로 이루어져있었으며, 입학과 졸업제도가 있었고, 입학금과 수업료를 납입해야만 했다. 통학을 원칙으로 하고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왕조시대의 기생은 궁중 춤만 추웠다면 일제시대 기생은 장악원 소속의 교사와 관기 출신의 교사와 민간에서 발달된 예술의 전문예인 교사까지 식민지화로 인해 게이샤의 필수과목인 샤미센과 일본창 일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목을 체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게이샤의 예능교육은 게이샤는 기원부터 민간에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예인으로 발달해왔으며, 에도시대에 유곽에서 샤미센을 연주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예능교육은 개인학습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게이샤학교가 생긴 것은 메이지시대에 들어서이다. 게이샤의 수입의 일정부분을 세금으로 부과하여 1872년(메이지5년)에 뇨코바를 설립하였다. 뇨코바에서 수업을 듣지 않으면 게이샤의 일을 할 수 없게 강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1881년에 강제적이었던 수업이 자발적 참가 형태로 변화했다. 일본 게이샤 사회의 기본구조는 권번-요리점-오키야로 되어있어 오키야에 소속되어 시코미-미나라이-게이샤 과정을 거치게된다. 게이샤의 예능에는 지역별로 류파가 존재하는데, 그 류파는 명류파의 최고권위자인 초대 이에모토로 부터 2대, 3대로 계승되어 내려온다. 그리고 그 류파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그 지역의 게이샤만이 자격을 갖는다. 예능과목 이외의 게이샤의 필수과목으로는 다도가 있다. 다도는 전문다도학교에 가서 배운다. 그리고 교토말과 하나마치의 단어를 익힌다. 게이샤는 고객을 대접하는 서비스업을 가진 직업여성으로서 고객을 대하는 기술, 대접하는 기술, 대화 기술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생과 게이샤는 사회적으로 최고경지의 능력을 요구 받았으며, 그 목적으로 예능학교가 존재했고, 예능적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매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일본식민지시대 권번은 조선왕조시대의 기생교육기관의 교방과 일본의 권번제도가 믹스된 새로운 성격을 가진 권번이라 할 수 있다.

목차

はじめに
1.妓生の芸能教育について
1.1.朝鮮王朝時代
1.2.日本植民地時代
1.3.教師
2.芸者の芸能教育について
2.1.江戸時代
2.2.明治時代
2.3.大正時代~昭和時代
2.4.今日
2.5.教師
3.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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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美英(김미영). (2016).妓生および芸者の芸能教育の比較. 문화와융합, 38 (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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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美英(김미영). "妓生および芸者の芸能教育の比較." 문화와융합, 38.4(20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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