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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일 양국에서 누가 먼저 ‘독도’를 인지하였는가

이용수 57

영문명
Who Recognized Dokdo First, Japan or Korea?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자명
김호동
간행물 정보
『민족문화논총』제44집, 3~32쪽, 전체 3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0.04.30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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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일본 외무성의 竹島 홍보 팸플릿의 ‘포인트 1. 일본은 옛날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와 ‘포인트 2.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는 독도를 한 일 양국 ‘어느 쪽이 먼저 인지하였는가?’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본 논문은 이런 시각을 갖고 죽도 홍보 팸플릿의 ‘포인트1~2’를 비판하였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이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1846년판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이 독도를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였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또 일본 외무성은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고 하면서 태종 17년(1412) 2월 5일자의 기록에서 김인우가 15구 86명이 사는 우산도에서 돌아왔다는 사료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전후 우산도에 관한 사료와 결부시켜 볼 때 당시 중앙정부가 무릉도 사람들이 우산도를 들락날락거리며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산도도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인우가 우산도와 무릉도에서 돌아온 것을 우산도에서 돌아왔다고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또 일본 외무성은 『여지지』의 원래 기술은 우산도와 울릉도는 동일의 섬이라고 하였다고 하지만 ‘일설’이라는 단어를 빼고 ‘一島 二名說’이 『여지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는 우산도와 울릉도의 위치와 크기가 잘못 그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모습이나 제주도 등의 위치와 크기도 잘못 그려져 있다. 그것을 도외시하고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는 외무성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일본 외무성은 ‘10 포인트’를 통해 17세기 영유권 확립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지하였다는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태종 17년 이후의 자료에서 독도(우산도)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한 사실이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지만 그것을 비판한 일본 외무성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영문 초록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일본이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였다는 근거는 타당한가?
Ⅲ.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였다는 근거는 없는가?
Ⅳ. 맺음말
參考文獻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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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동. (2010).한일 양국에서 누가 먼저 ‘독도’를 인지하였는가. 민족문화논총, 44 , 3-32

MLA

김호동. "한일 양국에서 누가 먼저 ‘독도’를 인지하였는가." 민족문화논총, 44.(2010):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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