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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자성록(自省錄)』의 일본에서의 판각(板刻)과 영향력

이용수 30

영문명
The Publication and Influence of Toegye s The Record of Self-Reflection in Japan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자명
이희재(Heejae Lee)
간행물 정보
『민족문화논총』제57집, 279~301쪽, 전체 23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4.08.30
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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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Toegye’s The Record of Self-Reflection edited his letters that sent to his students and friends for his reflection. He has exchanged the letters with his students and friends over a span of 5 years from old to 60 years. According to the Record of Reflection, he regarded that the important thing for moral training is the equanimity. He thinks that the equanimity mind makes a personal cultivation. Many people do not have the equanimity mind, they want to rapidly results. He respected to Chu Hsi as a mentor and praised him as a best teacher in the world. World is divided into two side, Li(truth )and Gi(sense), he puts emphasis on li(truth). He recommended the truth in everyday living and control to the sensible life. This book finished on May in 1556. After 27 years old, this book was carved in 1585 and printed in 1586 by Kim Sung-il who served mayer of Najoo city at that time. There are two types in Japanese version, one was printed to copy original Korean version, other are printed to add Japanese endings in 1660 and 1665 in Kyoto, Japan. Korea version’s titled ‘Toe-do Sean-saeng Jasungnok’, while Japanese version’ titled ‘Toe-Gye Sean-saeng Jasungnok’. Korean version lined in the book, while Japanese version has no line. In Japan, Yamajaki Ansai(1618-1682) and Ozuka Taiya(1678-1750) appreciated the value of this book. They moved deeply from the reading this book. Their students also loved to the book and respected to Toegye’s philosophy.

영문 초록

퇴계의 『자성록』 은 다른 사람을 위해 출판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찰의 삶을 위해 그 자신이 보낸 편지글을 엮은 것이다. 그는 55세(기묘. 1555)에서부터 60세(경신. 1560)에 이르는 5년간 즉 사상적인 원숙기에 문인들에게 보낸 서간 22통으로 편집하여 자신의 성찰의 자료로 삼았다. 자성록 에서 퇴계는 수신(修身)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정이라고 보았다. 평정된 마음을 가져야 사물을 제대로 보며 또한 바람직한 인격도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음의 안정없이는 위기지학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또한 성급하게 어떤 결과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긴다고 보았다. 퇴계는 주자를 스승으로 삼고, 자신 뿐만 아니라 고금의 존경받는 스승이라고 찬탄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理)는 흔히 기(氣)와 대조되는 가치관인데, 퇴계는 이귀기천(理貴氣賤)으로 이(理)는 귀한 것이며 기(氣)는 천박한 것이라고 했고, 존리멸욕(存理滅欲)다시 말해서 ‘존천리알인욕(存天理?人欲)’을 인생의 지표로 삼았다. 항상 마음을 비우고 이(理)를 생각하고 그 이(理)를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이야 말고 평생 선비가 해야 될 과제라는 것이다. 『자성록』 은 퇴계가 1558년 단오절에 쓴 것이지만 사장되어 있었다. 서문을 써 둔지 27년후인 1585년(선조 18)에 판각되었다가 다음해인 1586년(선조 19)에 나주에서 당시 나주목사였던 학봉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발간되었다. 일본에서 판각된 독립된 『자성록』 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일본의 고간본 (古刊本)으로 조선간본을 그대로 복각한 것이고,다른 하나는 1660년과 1665년에 교토에서 간행된 일본판 『자성록』 이다 .두 서적을 비교해 보면 조선판의 제목은 「퇴도선생자성록(退陶先生自省錄)」이라고 되어있는데 비해 일본판은 「퇴계선생자성록(退溪先生自省錄)」이라고 되어있다.일본판에는 행간에 줄[界線]이 없고, 조선판은 줄[界線]이 있다. 1665년(寬文5년)간본(刊本)은 일본 고간본을 저본으로 해서, 훈점(訓點)을 가해서 간행했다. 고간본이 본문 10행 18자로 있는 것에 대해서, 관문본(寬文本)은 9행 18자이다. 일행(一行)씩 감해서 훈점을 하여 각(刻)을 했다. 일본에서 이 책의 가치를 인식한 인물은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1618 ∼1682]와 오츠카 타이야[山崎闇齋,1678 ∼1750]라고 할 수 있다.그들을 감격시켰고 그 문파에서 오래 애독되었다.이들은 퇴계의 학풍을 숭모하여 수양을 위주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적 인격도야를 중시했다.퇴계의 학문이 주자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기성찰에 있다는 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일본의 유생들에게 중시되고 존중되었으며 근세에 까지 일본사상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자성록(自省錄)』의 주요내용과 국내에서의 출판
Ⅲ. 퇴계 『자성록(自省錄)』의 일본에서의 판각(板刻)과 영향력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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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이희재(Heejae Lee). (2014).퇴계 『자성록(自省錄)』의 일본에서의 판각(板刻)과 영향력. 민족문화논총, 57 , 279-301

MLA

이희재(Heejae Lee). "퇴계 『자성록(自省錄)』의 일본에서의 판각(板刻)과 영향력." 민족문화논총, 57.(2014): 27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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