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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개역에 대한 근세 일본인의 인식

이용수 179

영문명
The Early Modern Japanese People’s Recognition of Kaieki -Focusing on Masanori Fukushima’s Shukou Cases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양익모(Yang, Ik-mo)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46집, 273~291쪽, 전체 19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3.05.30
5,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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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에도시대에 있어서 다이묘의 처벌 가운데 하나였던 개역과 수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음에 따라 막부와 다이묘의 관계에 있어 막부의 다이묘 통제가 과장되게 그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막번관계를 서술할 때 막부가 다이묘를 엄하게 통제하였다고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사료를 검토해 보면 막부와 당자자인 다이묘는 개역과 수공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겐나(元和)년간에 일어난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수공 사례를 소재로 근세 일본인이 다이묘의 개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명확히 하기위한 검토를 행하였다. 다이묘가 수공된 사실은 재번(在藩)의 다이묘들에게는 로주봉서로 재부(在府) 하고 있던 다이묘들에게는 에도성에서 직접 전달되었다. 이때 막부는 「메시아게(召し上げ)」라는 수공으로서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전달 받은 주변 사람들은 수공이 아닌 개역으로 기록하고 있는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사례를 보면 성 인수를 위해 파견된 上使가 막부의 견해를 대변하여 전달한 내용이 아니라 그 사실을 전달받은 마사노리의 가신인 후쿠시마성 죠다이(城代)가 히로시마번 사람들에게 마사노리의 수공사실을 전달할때 개역으로 전하고 있다. 이것은 막부와 다이묘의 공식적인 표현 내지는 처벌은 수공이라 해도 大다이묘의 감봉을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주변사람들이 개역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종래의 연구에서 수공사례가 개역으로 취급되어 막번관계를 규명할 때 막부의 다이묘 정책이 상당히 엄하였다고 분석하는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영문 초록

The unclear distinction between Kaieki and Shukou, two types of punishment of Daimyos in the Edo period resulted in exaggerated description of Bakufu’s control over Daimyos in their relation. As a result, the conclusion in the description of the Bakuhan relationship was that Bakufu strictly controlled Daimyos. However, one can see from the examination of historical data at that time that Bakufu and Daimyos, the party involved, clearly distinguished Kaieki and Shukou. This paper has carried out some reviews in order to clarify how the early modern Japanese people recognized Daimyos’ Kaieki with Masanori Fukushima’s Shukou cases as its subject materials, which occurred in the Genna years. A Daimyo’s Shukou was made known to Daimyos in Han’s in the form of sealed envelope by the senior councilor and to Daimyos in Bakufu directly from Edo Castle. In such a case, Bakufu decided to carry out Meshiage (召し上げ) as a kind of Shukou. However, in a case of Masanori Fukushima where people informed of the punishment recorded it as Kaieki not as Shukou, the punishment was known not as what had been delivered by 上使, who had been dispatched to take a castle, in behalf of Bakufu, but as Kaieki by the chamberlain of Fukushima Castle, one of Masanori’s vassals, who informed people in Hirosima Han of Masanori’s Shukou as Kaieki. This can be seen as an expression of Shukou as Kaieki by people around him, who took the great Daimyo’s Kenpou (disinheritance of possession) to be a serious event, though the official expression of the punishment by Bakufu and Daimyos was Shukou. Thus, we should reconsider the analysis of the Bakuhan relationship in previous studies, which claimed that Daimyo policies were considerably strict.

목차

Ⅰ. 머리말
Ⅱ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수공 사례 분석
Ⅲ. 후쿠시마 마사노리 처분에 대한 주변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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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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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모(Yang, Ik-mo). (2013).개역에 대한 근세 일본인의 인식. 역사문화연구, 46 , 27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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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모(Yang, Ik-mo). "개역에 대한 근세 일본인의 인식." 역사문화연구, 46.(2013): 27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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