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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명칭가곡 수용의 양상과 의미

이용수 298

영문명
On Acceptance of the Mingcheng-gequ in Joseon Korea
발행기관
한국문학회
저자명
임주탁(Yim, Ju-Tak)
간행물 정보
『한국문학논총』제51집, 5~50쪽, 전체 46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9.04.30
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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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명나라 태종대에 제작된 명칭가곡이 우리나라에 수용된 과정과 논리, 그리고 끼친 영향 등을 살핀 논문이다. 억불숭유를 정책기조로 삼은 조선이 세종대에 이르러 불교를 수용하고 궁궐에까지 사찰을 창건하는 등 종교사상적 측면에서 포용적인 정책을 추진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노래 특히 신이한 사적을 담은 노래를 제작하는 등 문학 문화사적 측면에서 유가적 합리주의에 배치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그 원인이 명칭가곡을 비롯한 불서의 수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혔다. 유학을 신봉하는 관료들이 명칭가곡과 같은 불곡의 수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의 과정에서 종교적 내용보다 이소사대(以小事大)의 원칙을 더 중시하여 수용을 표방하는데, 이는 종교사상에 대한 세종의 포용적인 정책 추진을 가능하게 했다. 단박에 모든 인민의 신앙을 바꿀 수 없다면 비록 이단이라 하더라도 인정하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세종은 불교와 도교 등 다양한 종교사상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포용 정책은 유학자들로 하여금 부분적인 반발을 싸게 했지만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유가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사상을 통합하는 길을 모색하게끔 했다. 그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 한림별곡이다. 명칭가곡의 수용은 또한 신승전을 비롯한 불서들의 수용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유학자들은, 신승전이 명승들이 성(聖)이 되고 신(神)이 되는 까닭을 인민들에게 이해시킬 목적에서 지어졌듯이, 조선 왕조를 연 새로운 왕실의 조상들이 성이 되고 신이 되는 까닭을 이해시킬 목적에서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그에 조응하여 세종은 한문을 깨치지 못하고 한어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인민들이 부처를 존숭할 수 있도록 부처가 성이 되고 신이 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사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다. 이렇게 명칭가곡의 수용은 세종대의 통치 방향은 물론 문화 상황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how the Mingcheng-gequ (名稱歌曲), which had been created by King Taizong (太宗), the second of Ming China (明), in 1417, was accepted and what influences there were in Joseon Korea (朝鮮). The Mingcheng-gequ was a sort of Buddhist music, but different from other ones. Its texts were composed of all the names of Buddha who had been appeared in the world with different names by the times. Ming China could not exercise religious influences to Joseon Korea because of its toadyism toward it, but by giving many copies of Mingcheng-gequ to Joseon Korea, it did so. It gave King Taejong (太宗), the third of Joseon Korea, troublesome problems because he had declared to his people that he would cherish Confucianism by laying restraint on Buddhism. He, however, could not say no. Most Confucian bureaucratic governors could not say no too because they all had cherished worshipping Ming China much more than laying restraint on Buddhism. Joseon Korea under King Sejong (世宗) regime, accepted all the copies of Mingcheng-gequ and spread to most temples in Seoul and other provinces. By here, there were several phases through which he cultivated several logics against most Confucianists. An important logic was that if they could not reject Mingcheng-gequ nor keep the people from all the teachings of Buddhism, they had to invent a new way of reign, the way which include all of them. Owing to this logic, many new songs of different forms were made even by Confucianists under King Sejong regime. Through this paper, we know why most new versions of Hallim-byeolgok (翰林別曲), like Sangdae-byeolgok (霜臺別曲), Hwasan-byeolgok (華山別曲), and etc. were created in the period, why Confucianists at that times participated in creating such new songs and Yongbieocheon-ga (龍飛御天歌), and why and how King Sejong made a version of Buddhist song like Worincheongangjigok (月印千江之曲).

목차

Ⅰ. 서론
Ⅱ. 명칭가곡 수용의 양상
Ⅲ. 명칭가곡 수용의 의미
Ⅳ. 결론
초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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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탁(Yim, Ju-Tak). (2009).명칭가곡 수용의 양상과 의미. 한국문학논총, 51 ,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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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탁(Yim, Ju-Tak). "명칭가곡 수용의 양상과 의미." 한국문학논총, 51.(2009):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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