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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契丹과 高麗의 사절 왕래 - 東京使를 중심으로

이용수 286

영문명
A study of the Diplomatic Envoys between Khitan and Goryeo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유빛나(Ryu Vit Na)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70집, 215~250쪽, 전체 36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9.05.30
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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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논문은 거란과 고려의 조공책봉관계 속에서 나타난 사절왕래 중에서 거란동경과 고려국왕 사이에 나타났던 사행을 분석한 글이다. 거란과 고려사이의 사절 왕래를 통해 지금까지 황제가 파견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동경사에 대해서 재검토하고, 동경사의 파견의 목적과 특징을 분석하고자 했다. 동경사는 거란이 고려에 파견한 사행 중에 2번째로 많은 횟수로, 총 35차례 파견되었다. 다만 고려는 거란에 총 10차례 동경사를 파견하였지만, 거란에서 고려로 파견한 사행의 명칭이 回禮使 혹은 回謝使이기 때문에 고려에서 보낸 답례차원에서 파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동경사는 거란 황제와 고려 사이에 나타났던 외교문서 형식과 다른 ‘致書’ 형식을 통해 대등한 관계에서 사행이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동경사의 파견에는 거란 동경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처음에 거란동경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잔존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고려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거란 동방을 책임지는 동쪽의 수도역할을 담당하였 다. 따라서 동경유수는 동경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가져 대부분 거란인으로 임명되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상당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경사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초반기에 거란 조정과 고려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로 활용되었다. 이를 통해 동경유수와 고려국왕 사이에서는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사적인 교류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양국 조정의 교섭창구 역할과 양국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양국 간의 동경사는 거란의 외교제도와 오경제를 답습했던 금에서도 나타나는데, 금대의 동경사 또한 거란과 비슷한 사행으로 추정된다.

영문 초록

This paper anyalizes envoys’ exchages between Khitan Dongjing and Goryeo emperors under the conditions of tribute-investiture system of Khitan and Goryeo Dynasty. It also seeks to reexamine the Dongjingshi which was considered to be sent by the emperors between Khitan and Goryeo and to find out the purpose and features of it. Dongjingshi was the envoy that was sent by Goryeo, and was used thirty-five times which means the second frequency among envoys. Goryeo sent the Dongjingshi to Khitan eight times, and Khitan sent Goryeo envoys that was named with ‘回禮使(Huilishi)’ or ‘回謝使 (huixieshi) of which meaning was reponding to Goryeo. Dongjingshi was thought to be equally changed, because they used the ‘致書(zhishu)’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diplomatic document beteen the two. The history of Dongjingshi implied the importance of Khitan Dongjing. At first, Khitan Dongjing had the role of controlling the remnants of the Balhae, but later it has changed the role into not only making relationship with Goryeo but also taking charge of the eastside of Khitan. So 東京留守(Dongjing-liushou) was filled with Khitan people because it had administrative and military power of Dongjing, so especially people who has considerable authority in that area were in charge of it. Dongjingshi was started in this background, and in the beginning it played an intemediary role between the Khitan and Goryeo courts. Dongjing-liushou and the emperor of Goryeo made an amicable relationship through Dongjingshi. Particulary, private exchanges were shown throught it, and it was also played as the window of negotiation and the control tower of solving problems between the two. This history of Dongjingshi between the two was also shown in the Jin Dynasty which stuck to the diplomatic institutions and Five-capital System of Khitan, so Dongjingshi in the Jin Dynasty was assumed to be the same as Khitan’s.

목차

Ⅰ. 머리말
Ⅱ. 양국의 국교수립과 사절 왕래 양상
Ⅲ. 거란 동경의 역할과 성격
Ⅳ. 동경사의 왕래와 그 특징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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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빛나(Ryu Vit Na). (2019).契丹과 高麗의 사절 왕래 - 東京使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 70 , 21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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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빛나(Ryu Vit Na). "契丹과 高麗의 사절 왕래 - 東京使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연구, 70.(2019): 21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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