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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變改와 避諱

이용수 79

영문명
Influencing factor of Pihwi(避諱) on the Busan s Name Change from 富山to 釜山
발행기관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저자명
김성진(Kim, Sung Jin)
간행물 정보
『동양한문학연구』東洋漢文學硏究 第52輯, 41~73쪽, 전체 33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9.02.28
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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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논문은 부산의 한자 표기가 왜 성종 말년을 전후해서 富山에서 釜山으로 변경되었는가를 살펴 본 것이다. 부산의 한자명은 [성종실록]1년 12월 15일조에 釜山이라는 한자 표기가 나타난 뒤 한동안 富山과 병용되다가 [동국여지승람]이 완성 발 간된 1486년 이후에는 釜山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정설화되어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부산의 한자명이 釜山으로 정착된 것은 1495년 4월 이후라고 보았다. 이는 [성종실록]의 기사는 실록청이 설치된 1495년 4월 당시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486년에 간행된 것이 아니라, [동국여지승람]을 바탕으로 대폭 수정 증보한 후 1530년에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산은 富山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 당시부터 대일외교의 독점적 거점이었다. 따라서 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변경은 일본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본 논문에서는 그 당시 일본 무 로마치막부의 실질적인 최고권력자가 日野富子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대일외교문서에서 ‘富’자를 피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日野富子에 의해 쇼군이 되었다가 다시 日野富子에 의해 쇼군직에서 밀려난 아시카가 요시키가 越中公方이라는 망명막부를 세운 곳이 지금의 富山縣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하였다. 요컨대 富山을 釜山으로 바꾼 것은 日野富子와 越中公 方이 있던 富山縣의 ‘富’를 피휘한 결과라는 것이 본 논문의 요지이다.

영문 초록

This paper aims to discover the reason for the chracter change of busan from 富山to 釜山during King SungJong s later years. The widely accepted explanation of it is this: 釜山appeared in the Annals of SungJong in his first year Dec. 15th, and that name was used jointly with 富山for a while until it was settled as 釜山after 1481 when ‘Donggugyeoji -seungnam’ was published. However, I argue that the establishment of 釜山was after April of 1495, since the article in the Annals of SungJong reflected the circumstances of political and diplomatic events of April, 1495. Another factor to consider is the fact that [Donggugyeojiseungnam] currently circulated was the ‘Newly Revised Version of Donggugyeoji- seungnam’, which was finalized in 1530. Busan was the exclusive base of diplomacy toward Japan since it had been noted as 富山in the documented literature. Therefore, it is quite reasonable to see the name change from 富山to 釜山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Japan. When the character change began, the highest authority in Japan s feudal government, Muromachi Shogunate, was practically 日野富子. Avoiding the chinese character ‘富’ in the diplomatic documents was sensible. Asikaga Kiyosaki, who was crowned as shogun and later uncrowned by 日野富子went to seek political asylum in a place called 富山縣. Therefore, to avoid using 富was reasonable since the Japanese leader s name and the asylum chosen by his political opponent shared the character 富 and Busan s naming consequently was changed from 富山to 釜山.

목차

1. 序論
2. 避諱에 따른 人名ㆍ地名ㆍ藥名 등의 變改
3. 對日外交上의 避諱와 ‘富山’의 漢字名 變改
4.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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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Kim, Sung Jin). (2019).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變改와 避諱. 동양한문학연구, 52 , 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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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Kim, Sung Jin). "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變改와 避諱." 동양한문학연구, 52.(2019): 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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