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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對明관계와 공험진

이용수 251

영문명
발행기관
백산학회
저자명
한성주
간행물 정보
『백산학보』第103號, 1~30쪽, 전체 3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12.30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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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朝鮮초기 여진 세력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조선과 明은서로 간에 치열한 외교전을벌여왔다. 명은몽골세력의위협과遼東을완전하게장악하지못한상황이었고, 조선역시대내외적으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양측은 무력적 충돌보다는 외교적인 방법으로 요동의 女眞세력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명이요동에있던여진인들을招諭하여명에귀속시키려고하자, 조선은李成桂의세력기반으로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고려 때 尹瓘의 여진 정벌에서 역사적 권원을 찾아 여진인 및 그 거주 지역에 대한 관할을 주장하였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윤관이 설치했다는 公險鎭이었다. 조선은 윤관의여진征伐이豆滿江以北에대해실시된것이고, 공험진은두만강이북에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만강 이북에 있는 공험진 以南부터는 조선의 관할 지역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명으로부터 11處지역의 여진 귀속 문제를 승인받았던 것이다. 명은 조선의 주장을 승인하였지만, 여진 추장에 대한 초유를 계속하여 왔다. 특히 會寧의 斡朶里추장 童猛哥帖木兒의 명 入朝문제는 조선과 또 다른 외교문제가 되었다. 조선은 다시 공험진이남에대한주장과더불어동맹가첩목아가명이승인한11처지역의사람이라고주장하였다. 결국명은여진초무가조선과地面, 즉영토를다투는것이아님을분명히하였고, 영락제 역시 조선의 주장이 옳다고 하여 조선의 공험진 인식과 그 관할을 다시한번 인정하였다. 특히 조선은 공험진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권원’뿐만 아니라 이것을 인정받아 ‘실효적 지배’가 이루어져왔음을주장하였다. 조선의주장을인정할수밖에없었던명은동맹가첩목아가皇后의親族이라는 이유를 들며 그의 명 입조를 관철시켰다. 결국조선은고려시대윤관의여진정벌과9城축조이래공험진과先春嶺은조선의영역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었으며,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사실을 들어 공험진 이남과 그 지역의 여진인들을 조선이 관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명이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들을 초유하려 하자 조선이 공험진 이남이 조선의 관할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명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은 공험진의 실제 위치와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당시 조선이 주장한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이었으며, 두만강 이북에 위치한 공험진부터 조선의 관할로 인정을 받은 것은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국제적 공인을 받은 것이나 같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세종대 6진 설치와 조선의 여진에 대한 정책에 주요 근거들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조선이 명에 공험진 이남에 대해 ‘역사적 권원’과 ‘실효적 지배’의 주장을 하며 이것을 공인받은 것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명의여진초무와여진의조선복속상황
Ⅲ. 명의 11처 여진 초무와 조선의 대응
Ⅳ. 명의 동맹가첩목아 초무와 조선의 대응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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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2015).조선 초기 對明관계와 공험진. 백산학보, (103),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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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조선 초기 對明관계와 공험진." 백산학보, .103(2015):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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