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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燕式土器文化의 확산과 後期 古朝鮮의 토기문화

이용수 534

영문명
발행기관
백산학회
저자명
鄭仁盛
간행물 정보
『백산학보』第100號, 1~50쪽, 전체 5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4.12.30
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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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영남지역에서 회도문화인 와질토기의 발생이 낙랑토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더욱 소급된다는 주장이 제시되면서 후기고조선 토기문화의 이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글에서는 後期古朝鮮의 토기문화를 단순히 漢文化를 제외한 무문토기 유형에서만 찾으려하는 기존의 이해를 비판하고 在地系 무문토기의 바탕에 戰國時代 燕國土器의 기술적 영향이 더해진 것으로 보았다. 즉 세죽리-연화보 토기도 후기 고조선토기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죽리-연화보 유형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전형적인 연국 토기와 비교를 통해 형태론적인 측면은 물론 기술론적인 차원에서 상호 비교하였다. 그 결과 세죽리-연화보의 연식토기라는 것이 이미 요동지역에서 특화된 토기라는 것을 밝혔으며 그것이 점토대토기라는 무문토기의 바탕 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뿐만아니라 燕國 釜形土器의 확산이 대릉하나 요하 주변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나아가 세죽리-연화보 유형에는 한대가 되어 새롭게 반입된 연토기 요소를 변별할 수 있었다. 결국 토기문화의 성격으로 보건데 세죽리-연화보에 포함된 燕土器 요소를 근거로 전국시대 燕國의 영역지배가 요동을 지나 청천강에 이르렀다는 해석은 문제가 있다. 그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요동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나 세죽리-연화보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토기문화는 燕國의 土器文化가 아니라 後期 古朝鮮의 土器文化인 것이다. 더 이상 미송리형 토기가 고조선 토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분위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南越國의 토기문화에서 드러나듯이 고조선 토기에 중원 토기의 영향이 상존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중원 물질문화의 영향이 전혀 인지되지 않는 공간에서 고조선과 그 문화를 찾으려는 접근방법에서 벗어나야만 고조선이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燕山山脈 以南 燕式土器의 이해
Ⅲ. 典型燕式 釜形土器의 東界
Ⅳ. 細竹里-蓮花堡 土器와 後期 古朝鮮土器
Ⅴ. 遼東式 釜形土器와 後期 古朝鮮土器
Ⅵ.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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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仁盛. (2014).燕式土器文化의 확산과 後期 古朝鮮의 토기문화. 백산학보, (100), 1-50

MLA

鄭仁盛. "燕式土器文化의 확산과 後期 古朝鮮의 토기문화." 백산학보, .100(2014):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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