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唐末 黃晟의 明州 관할과 寺院
이용수 32
- 영문명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저자명
- 鄭淳模
- 간행물 정보
- 『동국사학』제55권, 403~447쪽, 전체 45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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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黃晟은 唐末 각지의 혼란 와중에서 출현한 전형적 武將으로 18년간 明州를 관할하였다. 그는 주변 群雄들과 연대하여 자신을 보호하였고 최종적으로 錢?에 협력하여 明州를 관할할 수 있었다. 그의 정치적 성공은 唐에 가담하여 명분을 잃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明州를 안정시키는데 크게 공헌하고 士人들을 예우하는 등 지역민의 존경을 받았던데 있었다.
明州는 대내외의 주요 창구로서 국내외 諸國과 활발한 교류와 교역이 전개되었다. 황성은 商人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고 안정적인 교역 활동을 유지하는데 진력해야 했다. 그의 정치적 선택은 항상 明州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황성이 羅城을 축조하고 浮橋를 건설한 것은 치안과 활발한 교역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이었다.
황성은 사원이 현실적으로 구비했던 중계지로서의 역할을 중시하여 佛敎 寺院을 적극 활용하였다. 상인 역시 주요 檀越로 등장하였고 황성 스스로도 직간접적으로 6곳의 사원을 건립하거나 후원하였다. 특히 그는 墳寺를 건립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는 그가 지역 장관으로서 관할 지역의 사원도 통제하고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 활용 내용은 明州에서 大運河의 기점인 항주까지 연결시키는 역할이었다. 황성이 사원을 교역에 활용한 사례는 멀리 登州 無染院의 건립에서 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상인도 이곳을 교역에 이용하였지만 이곳의 주요 단월은 黃晟 등 吳越의 지배자였고 兩浙과 中原지역의 교역 활동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吳越國의 적극적 대외 교류는 商人僧侶와 互惠관계를 맺음으로써 달성하였다. 이러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직전 明州를 관할하고 교역과 교통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唐末 明州刺史 黃晟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黃晟의 傳記와 浙東지역의 정세
Ⅲ. 明州의 지리적 입지와 교역
Ⅳ. 寺院의 건립과 無染院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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