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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일제하 진주지역 天道敎의 문화운동

이용수 90

영문명
발행기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金希柱
간행물 정보
『동국사학』제55권, 255~294쪽, 전체 4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3.01.01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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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은 진주지역에 천도교구가 성립되는 과정과 3.1운동 이후 교단이 추진하였던 문화운동의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천도교의 뿌리인 경남서부지역의 동학은 1880년대 중반 진주 서안에 위치한 덕산에서 먼저 세력을 형성하였다. 호남과 인접한 덕산은 동학의 수용과정에 전라좌도, 즉 남접의 영향을 직접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덕산의 동학은 진주로 전파되어 1890년 이후 이 지역에 접소가 설치되었다. 1894년 농민항쟁을 거친 진주의 동학은 20세기 초 민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1904년 9월부터 주로 통문을 통해 진보회의 취지를 전하고 결성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대략 10월 초에 진보회 진주지회가 조직된 것으로 보이며 같은 달에 집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관의 지속적인 방해와 함께 일진회 세력이 대두되자 그 해 연말 회원 상당수가 일진회에 흡수되기에 이른다. 1906년 동학은 천도교로 개명하고 일진회 세력을 축출한 후 23개의 지역 대교구를 설립하였다. 이때 진주는 영남에서 유일하게 대교구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진주지역 천도교단이 공식적으로 성립된 시점도 이로부터 보아야 할 것이다. 교구의 구성원은 1894년 9월 기포에서 ‘고승당산 전투’, 민회운동까지 경험하였던 지역 동학의 1세대들이 주를 이루었고, 중심인물은 전희순이었다. 진주대교구는 1914년 7월에 와서 7개의 산하교구를 관할하는 거점교단으로 재편되었다. 여기에는 당시까지 진주가 도청소재지로 경남지역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사실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진주교구는 교단을 정비하고 교직을 확충하며 세력증대를 기하였으나 기대만큼의 결과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3.1운동에서 진주의 천도교는 세력화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고 역할도 미미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교단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후 이 지역 천도교가 약동할 수 있었던 조건이 되었다. 3.1운동 직후 중앙총부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진주에 천도교청년교리 강연부가 조기 설치되었다. 1920년 4월 이를 개편, 발전시킨 진주천도교청년회가 성립되면서 지역 천도교의 문화계몽운동은 본격화되었다. 부인야학부를 시작으로 노동야학, 전교실, 강습소 건립 등 3.1운동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교육전도활동이 활기를 띠게 된다. 계몽운동의 전파수단이었던 강연회도 지역민의 관심 속에 성행하였다. 강연회는

영문 초록

목차

Ⅰ. 머리말
Ⅱ. 진주지역 동학의 전래
Ⅲ. 천도교 진주교구의 성립과 추이
Ⅳ. 1920년대 진주지역 천도교의 문화운동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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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希柱. (2013).일제하 진주지역 天道敎의 문화운동. 동국사학, 55 , 25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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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希柱. "일제하 진주지역 天道敎의 문화운동." 동국사학, 55.(2013): 25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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