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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충청지역 서원의 복설 추이와 성격

이용수 11

영문명
A study on the trend and characteristics of Seowon’ reconstruction in the Chungcheong region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자명
홍제연(Je Yeon Hong)
간행물 정보
『민족문화논총』제85집, 247~286쪽, 전체 4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12.31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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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충청지역은 1914년 이후 수차례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와 전라도 일부가폐합되며 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등으로 편제되었다. 본 고에서는 현재 이 네 개 광역시도에 존재하는 서원 사우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서원 관련 관찬기록에는 이 지역에 107개소의 서원과 사우가 있었고 이중 44개가 사액받았던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한 원사는 이보다 많았다. 서원훼철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각 지역의훼철대상 서원 목록은 기존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던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인조대 이후 서원 설립을 규제하며 숙종, 영조, 고종대에 대규모 서원 훼철이 이어졌고, 충청지역에 남은 서원은 5개소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조치 이후국내에서 가장 먼저 복설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청주의 화양서원이다. 훼철된지 불과 3년만인 1874년에 전국 각도의 유생이 일제히 화양서원 복설 요구 상소를 올리며 훼철령이 잘못되었음을 확인받고 복설의 명분을 얻으려 하였으나, 끝내 불허되었다. 화양서원은 그 상징성으로 인해 복설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보은 상현서원은 고위 관료였던 제향인의 후손이 재건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이제 지역 유림들은 각 서원 터에 단을 설치하거나 서당, 사서, 누정 등을 활용해 제향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1910년 이전 서원 건물을 다시 지은 곳도 8개소에 달하였다. 1910년 일제의 식민통치로 조선의 전통이 단절되면서 문중과 지역 유림은그저 제향 공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서원을 다시 세우려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충청지역에 22개소가 복설되었는데 그중 3개만 옛 충청좌도(현 충청북도) 지역이다. 이 시기에는 새롭게 창건된 서원도 등장했다. 대부분 문중의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충무공 이순신 등을 제향하는 아산 현충사는 언론사의 복설 운동으로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 재건한 특별한 사례이다. 광복 이후에는 많은 서원이 다시 세워지는데, 이중 조선시대에 훼철된 연혁을 가진 것은 44개소 정도가 된다. 한국전쟁 후 10년 단위로 약 10여개의서원이 꾸준하게 복원되고 있다. 옛 서원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지만 제향 인물이 달라진 경우도 있고, 부조묘, 영당 등으로 존재했던 제향시설이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워지는 것도 확인된다. 최근에는 지자체에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성역화 사업을 벌이거나, 문화관광 시설로 활용하는 경향이다.

영문 초록

This study is about the aspects of demolition and reconstruction of Seowon that currently exists in the Chungcheong region(South Chungcheong Province, North Chungcheong Province, Daejeon Metropolitan City, and Sejong Special City). In the materials related to Seowon created by the government during the Choseon Dynasty, it is recorded that there were 107 Seowons and Confucius in the Chungcheong region, and 44 of them received Saek(賜額). However, looking at the records created during the policy of abolishing seowon , it was foun d that there were man y more seowon . After the reign of King Injo, the establishment of Confucian academies was regulated,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demolished on a large scale during the reigns of Sukjong, Yeongjo, and Gojong, leaving only five Seowons in the Chungcheong region. Afterwards, the first discussion in Korea took place demanding the restoration of Hwayang Seowon in Cheongju. It was 1874, just three years after it was demolished. However, due to the symbolism of Hwayang Seowon, the state did not allow its reproduction. Now, the Con fucian class just wan ted a space to worship their an cestors. They just build a Dan(壇, altar) or held Ancestaral Rites in pavilion or seodang. Additionally, 8 rebuilding of previous seowon can check in 1910.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wenty-two seowons were rebuilt, and new seowons also appeared. In most cases, it was created under the initiative of the family. Uniquely, the ‘Asan Hyeonchungsa’ dedicated to Admiral Yi Sun-Shin(李舜⾂), was re-opened by the press through a campaign to re-open it. After liberation, Forty-Four seowons were reestablished. However, it was not reproduced in its original form. Recently, there is a tendency for local governments to designate Seowon as a cultural asset or carry out a project to transform it into a sanctuary and use it as a tourist facility.

목차

Ⅰ. 머리말
Ⅱ. 충청지역 서원의 훼철
Ⅲ. 1910년 이전의 서원 복설
Ⅳ. 일제강점기~현대의 서원 복설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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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연(Je Yeon Hong). (2023).충청지역 서원의 복설 추이와 성격. 민족문화논총, (), 24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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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연(Je Yeon Hong). "충청지역 서원의 복설 추이와 성격." 민족문화논총, (2023): 24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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