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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성신보≫의 명성황후시해사건 보도 태도와 사후조치

이용수 303

영문명
Reporting Attitude and After-action Report of Hanseong Shinbo on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발행기관
한국근현대사학회
저자명
張暎淑(JANG Young-sook)
간행물 정보
『한국근현대사연구』제82집, 37~64쪽, 전체 28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7.09.30
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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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연구에서는 ≪한성신보≫의 명성황후시해사건 보도 내용과 태도를 분석해 보았다. 보도는 1895년 10월 9일자부터 10월 19일자까지이다. 황후시해계획은 반민비세력의 거두인 대원군과 해산위기에 직면한 훈련대가 모의하여 일으킨 쿠데타로 위장되었다. 이를 위해 훈련대 병사들과 순검의 다툼을 10월 3일부터 보도하였다. 시해계획의 사전모의에 따라 훈련대가 순검을 상대로 고의로 충돌을 일으키고, 이를 신문을 통해 연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훈련대의 불만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었다. 또한 훈련대가 대원군 별장에 당도한 시간을 오전 1시로, 별장에서 지체한 시간을 한 시간가량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기존연구와 최대 1시간 반가량 차이 나는 서술이다. 당시 동원된 낭인배와 사복 차림의 순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서술도 하지 않아 일본의 필요에 따라 사건을 축소, 은폐, 왜곡 보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황후시해사건을 ‘사변’으로 표현하고, 대원군의 입궐 또한 고종의 무능하고 타락한 국정운영을 쇄신하기 위한 것으로 粉飾하였다. ≪한성신보≫는 고종과 명성황후를 비롯하여 대원군에 대한 이미지 조작을 시도해 나가기도 하였다. 고종은 부정과 부패, 간신들에게 둘러싸인 무능력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원군은 공명정대하게 개혁을 추구하면서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위대한 개혁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황후에 대해서는 황후의 부덕함과 황후답지 않은 처신을 비난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사변’의 과정을 거치면서는 당연히 없어져야 할, 사라져야 할 ‘원흉’으로 한층 조작된 이미지를 퍼뜨려 나갔다. ‘사변’ 이후 ≪한성신보≫에서는 사회적 혼란과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정부의 훈령을 고시하기도 하고, ‘사변’을 축소하기도 하며, 풍문에 속아 넘어가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다양한 고육책을 쓰고 있다.

영문 초록

In this study, the news contents and reporting attitude of Hanseong Shinbo on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were analyzed. An attempt on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was disguised as a coup performed by Military Training Division ‘Hullyeondae’ that was threatened with a break-up with Regent Daewongun who was a leader of anti-Empress Myeongseong force. For it, Hanseong Shinbo reported a fight between policemen and soldiers of ‘Hullyeondae’ from October 3, 1895. Also, Hanseong Shinbo reported that ‘Hullyeondae’ arrived in Regent Daewongun’s villa at 01:00 A.M. and stayed in the villa for about one hour. But, such time was the maximum one hour and a half hour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researches. Hanseong Shinbo never reported on mobilized gangs and policemen in plain clothes. That is, it is shown that Hanseong Shinbo curtailed concealed and distorted the murder case according to the need of Japan. While reporting on ‘the incident’, Hanseong Shinbo expressed that Emperor Gojong was a corrupt and incompetent political leader surrounded by disloyal subjects, and Regent was a great reformer who pursued reform in an even-handed manner and built the foundation in Chosun. Hanseong Shinbo also faked that Empress Myeongseong escaped quickly and sheltered herself as the Im-O Military Revolt in 1882. In such fake news, Hanseong Shinbo layed the blame on Empress Myeongseong’s immoral attitude consistently. However, Hanseong Shinbo curtailed concealed and distorted the murder of Empress Myeongseong by giving false news and opposed report details.

목차

1. 머리말
2. 축소, 은폐, 조작에 의거한 사건 보도
3. 고종, 명성황후, 대원군에 대한 이미지 조작
4. 사회적 동요와 혼란의 파장에 따른 사후조치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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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張暎淑(JANG Young-sook). (2017).≪한성신보≫의 명성황후시해사건 보도 태도와 사후조치. 한국근현대사연구, 82 , 37-64

MLA

張暎淑(JANG Young-sook). "≪한성신보≫의 명성황후시해사건 보도 태도와 사후조치." 한국근현대사연구, 82.(2017): 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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