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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百濟의 對中關係와 使臣路

이용수 484

영문명
The Relationship and Sea Routes between Baekje and China - Focusing on the diplomacy with Northern Dynasties
발행기관
백산학회
저자명
조범환(Cho Beumhwan)
간행물 정보
『백산학보』第116號, 45~66쪽, 전체 22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0.04.30
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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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논문은 백제가 중국과의 교섭에서 남조보다는 북조 왕조와 교섭을 추진한 목적과 그것이가지는 의미 등에 대해서 검토해 본 것이다. 백제는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교섭에서 대부분 남조왕조를 통해 신문물을 수입하였기에 남조 왕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렇지만한성백제시기 개로왕대와 사비시대 위덕왕대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교섭에서 벗어나 북조 왕조와 교섭을 추진하였기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로왕은 북위 효문제에게 표문을 보내 고구려를 정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표문의 내용은북위에게 고구려를 쳐야 하는 명분을 주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다 보니 표문의 내용이 과장되고허위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이와 같은 내용을 보낼 수밖에없었던 것은 직면한 문제 즉 고구려의 군사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북위가건국된 이후에도 그리고 또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였을 때도 사신을 보내지 않다가 느닷없이사신을 보내 고구려 정벌의 명분을 표명한 것은 이와 같은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개로왕의 이와 같은 대북위 교섭은 황제의 거절로 끝이 났으며 결국 고구려의 군사적공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로왕은 남조 일변도의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 북조와의 외교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진정성이 결여된 외교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못하였다. 더 나아가 개로왕은 중국의 북조 정권이 남조 정권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 것을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였던 결과에서 이와 같은 일이 빚어진 것이다. 또한 개로왕대 대중국 외교를 담당한 관료들은 남조 일변도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던 실무 주역들이었으므로 북조 정권과의외교 정책의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할 수 있다. 사비 시기 위덕왕은 또다시 북조 왕조와 교섭을 재개하였다. 당시 고구려나 신라는 이미 북제와 교섭하여 책봉을 받은 상태였기에 백제로서는 상당히 늦게서야 대중국 교섭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남조 왕조의 진과 북조 왕조의 북제에 각각 사신을 파견하여 남조 일변도의 외교정책에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북제에 사신을 파견한 것은 고구려를 염두에 둔 행위였다기 보다는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무엇보다 컸다. 물론 중국 대륙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것과아울러 국제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남조의 진뿐만 아니라 북제와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주가 화북을 통일하자 곧바로 사신을 보냈으며 다음 해에도 또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북주가 들어선 다음 단 한 번의 사신 파견으로그쳤으나 백제는 두 번이나 사신을 파견한 것에서도 그 사정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개로왕과 달리 위덕왕의 이와 같은 북조 왕조와의 교섭은 이후 통일왕조 隋로 이어진 중국의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개로왕의 실패를 거울삼아 위덕왕은 북조 왕조와의 교섭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백제의 북조 왕조와의 교섭에서 사행로는 서해 횡단항로가 주로 이용되었다. 물론 개로왕대와위덕왕대 사신들의 출발 장소는 상이하지만 바다로 나아간 이후 대체로 서해 횡단항로를 이용하였고 새로운 항로의 개척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영문 초록

This paper reviewed Baekje s negotiations with the Northern Dynasties rather than the Southern Dynasties and its meaning. To prevent the invasion of Goguryeo, King Gaero sent an inscription to the emperor of Northern Wei, Hyo-je, asking for the conquest of Goguryeo. It was a desperate countermeasure; however, the Northern Wei refused Gaero’s diplomatic contacts, which eventually led Baekje to a military attack from Goguryeo. Baekje enforced foreign policy to the North in a departure from its one-sided policy toward the South. Nevertheless, they did not prepared customized policy for the Northern Dynasties, so Baekje did not have any overachievements with the North. King Weduck negotiated with the Northern Dynasties following King Gaero. Dispatching his envoys to Bukje was more aimed at keeping Silla in check than keeping his mind on Goguryeo. Of course, Baekje had a purpose to detect changes in the North and South Dynasties and to cope with those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affairs. For example, Goguryeo sent the envoys only once to the Northern Dynasty, but Baekje sent twice. The Northern Dynasties and Baekje usually used the cross-border route in the West Sea as their negotiations. Surely, King Gaero and Weduck used different departure places to dispatch their envoys; however, the importance is that they pioneered a new route while using the cross-border route in the West Sea.

목차

Ⅰ. 머리말
Ⅱ. 개로왕대 대북위 교섭과 사신로
Ⅲ. 위덕왕대 대북제 및 북주 교섭과 사신로
Ⅳ.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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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환(Cho Beumhwan). (2020).百濟의 對中關係와 使臣路. 백산학보, (116), 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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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환(Cho Beumhwan). "百濟의 對中關係와 使臣路." 백산학보, .116(2020): 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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