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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임진왜란과 전라도, 그리고 아담스미스

이용수 155

영문명
발행기관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저자명
전성호(全成昊)
간행물 정보
『이순신연구논총』제4호, 1~22쪽, 전체 22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5.06.30
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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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동아시아에서 해양국가인 일본은 19세기 중반 중국이 아편전쟁을 계기로 쇠락의 길을 걸을 때 까지 혹은 동아시아를 벗어나서 서구로 편입해 들어가기 위한 국가적 선택(De-Asianization)을 하기까지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대륙에 대한 증오의 부정적인 국가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일본이 두차례의 지역전쟁을 일으킨 것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이다. 일본이 일으킨 두차례의 지역전쟁은 한번은 20세기초에 일으킨 대동아전쟁이며 다른 한번은 16세기말에 일으킨 임진왜란이다. 따라서 21세기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동아시아의 평화문제와 더불어 최근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궤도를 공유해온 중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수행함에 따라 미국의 동아시아 경제제도 연구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주로 15세기에서부터 19세기까지 유교의 시장경제제도의 특징에 그 논쟁점을 두고 있다. 이 논쟁은 동 시대 유럽과 동아시아는 서로 비슷한 생활수준과 시장제도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 그룹(케네스 포머란츠, 빈웡)과 두 지역은 서로 다른 역사적 궤도를 형성하였고 유럽의 진보(Evolution)와 달리 중국은 내권화(Involution)의 길을 걸어왔다는 스탠포드 대학(필립 후왕)의 연구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이 논쟁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점은 다루고 있는 대상 시기가 15세기에서 19세기라서 조선시대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과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일어난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된 16세기를 동아시아 국가질서의 주요한 분기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지역사 연구에서 임진왜란은 중심점을 형성하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국제적 관점의 연구가 부족한 상태이다. 또한 지금까지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는 정치적, 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 진행되어 왔고 그 경제적 의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임진왜란으로 중국의 경우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 자체가 교체되었지만 조선왕조는 교체되지 않은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왕조의 교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16세기말 임진왜란은 조선사회에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버금가는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 이유는 왕은 국토를 비우고 피신하였지만 일반적인 평민, 서민, 노비들이 의병을 조직하고 왜에 항전하면서 국토를 방위하였기 때문에 전쟁 후 국토회복과정에서 이전의 국가 법체계와 다른 원리의 국가 법체계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어난 국가질서의 변화를 경제제도와 전라도 지역의 경제적 위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구명해보려고 한다.

영문 초록

In this paper, I try to present the economic impact of Hideyoshi invasion on Korea. First of all, Cholla province which was a rich grain district and marine product, but from 13th century to 15th century Japanese piracy had extorted the grain and marine products from Cholla province. This is main reason why Cholla province became sparsely-populated district from 14th century to 16th century.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standards, rational government in 15th century based on statistics, cross-sectional analysis of demographic and land use from fif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southeast to northwest axis paddy land did not support the greatest population concentration. The largest difference between the fifteenth and eighteenth century appears that Cholla province gained on Kyungsang by eighteenth century, disappeared in aggression and destruction by Japanese pirates. Korea after Hideyoshi invasion possessed many promising Smithian characteristics. At least by 1746, there was a legal basis to protect property rights and to enforce contracts and the payment of debts. The archival materials clearly show an extensive and highly competitive market, unthinkable without protection for buyer and seller. Almost anyone had the right to produce and exchange products, labor, capital, and land. Small peasants appeared in rural markets, engaged in specialized activities, actively pursued their self-interests, and competed in the production and exchange of goods and services.

목차

Ⅰ. 문제제기
Ⅱ. 이순신장군의 전라도 수호와 전라도 지역의 경제안정과의 관계
Ⅲ. 자기노동에 근거한 사적소유의 기원으로서 임진왜란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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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全成昊). (2005).임진왜란과 전라도, 그리고 아담스미스. 이순신연구논총, (4),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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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全成昊). "임진왜란과 전라도, 그리고 아담스미스." 이순신연구논총, .4(2005):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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