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이윤일(?~1867)과 문경지역 천주교 교우촌

이용수 71

영문명
IYunIl(?~1867) and Catholic Villages in MunGyeong area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자명
김정숙(GimJeongSuk)
간행물 정보
『민족문화논총』제59집, 241~282쪽, 전체 42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04.30
7,84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영남지역의 순교자 이윤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主保聖人의 하나로 존중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이윤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필사본 자료인 『병인박해치명사적』과 깔래 신부의 서한을 통하여 확인했다. 따라서 본고는 영남 천주교회사의 상징적 인물인 이윤일의 생애를 밝힘과 동시에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생활을 밝혀보고자 했다. 우선, 본고에서는 이윤일의 가족관계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여 당시의 순교자들이 강한 혈연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윤일은 순교자 박경화, 박사의와 인척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을해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쳐 시대를 달리하여 순교한 사람들간의 연결관계를 살필 수 있었다. 둘째로, 본고는 이윤일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그는 조선에 신부가 한명도 없던 시절에 태어나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12년간이나 감옥에 살고 있던 박사의의 딸과 혼인했다. 그의 장인과 처의 조부가 순교했음은 물론, 병인박해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자신의 두 아들 시몬과 타대오가 순교했다. 이윤일의 집안에서는 사위와 사위의 삼촌, 처의 사촌인 박수산나 등이 순교했다. 그뿐 아니라 두 살 난 손녀는 옥에서 죽었고, 또 자신과 함께 살던 수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윤일의 순교는 그 집안 대대로 굳혀온 신앙의 결과였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터득한 새로운 세계관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 본고는 병인박해기간 여우목과 한실 교우촌이 박해를 견디는 모습과 그들의 향방을 추적했다. 이를 위해서 본고는 깔래 신부가 병인박해 때 8개월이나 피신해 있던 한실에서의 체험을 자세히 적어 놓은 서한 자료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은 『병인치명사적』(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박해기간 동안의 신자들의 생활과 교우촌간의 결속, 및 선교사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을 확인했다. 그리고 폐허화 된 교우촌 신자들이 다른 교우촌을 의지하여 새로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는 19세기의 조선인들이 조정의 압박을 피해 스스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던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문 초록

First, we could find the unknown family relations of IYunIl, Yi Thaddaeus and others, particularly, Park Saui, the Blessed, is his father-in-law. Park Saui and his father Park Gyenghwa was beatified by Pope Francisco in Aug. 16 2014. Thus, IYunIl has huge amount of family relations who are the martyrs including his two lovely sons, son-in-law’s family, wife’s family, etc. Secondly, the article definitely focus on the profound devotion of IYunIl who grown up during any catholic church and the priests non exist in the society. Also he, IYunIl, married a daughter of Park Saui who imprisoned for 12 years because of the Catholic faith. This marriage show us Catholics had married with each other to carry on the family line and came into close association among themselves, and also martyrs were being connected among three persecution, in detail, Jeonghae Persecution(1827), Gihae Persecution (1839), and Byeongin Persecution(1866). Third part of the article trace up the states, how the local residents of the Yeoumok catholic village and Hansil catholic village endure up the Byeongin Persecution, and also look for their direction after all. Most of the villager died martyrs because of persecution, and the others scattered places to places gathered again and settled in catholic villages. The Catholic communities were scattered throughout the country, which leads to help each other on a national scale and be closely united through catholic village-community life. Those above are the core sources protecting Catholicism without any compensation over a century which prohibited from Joseon dynasty.

목차

Ⅰ. 여는 글
Ⅱ. 이윤일에 대한 자료와 증언자들
Ⅲ. 이윤일의 생애와 박사의 집안
Ⅳ. 병인박해와 여우목 한실 천주교 교우촌
Ⅴ.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김정숙(GimJeongSuk). (2015).이윤일(?~1867)과 문경지역 천주교 교우촌. 민족문화논총, 59 , 241-282

MLA

김정숙(GimJeongSuk). "이윤일(?~1867)과 문경지역 천주교 교우촌." 민족문화논총, 59.(2015): 241-282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