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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고고학적 추론

이용수 851

영문명
Archaeological Consideration on the Early Koguryo Capital City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강현숙(Kang, Hyun-sook)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56집, 3~42쪽, 전체 40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11.30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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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국내도성의 경관이 4, 5세기에 치중되다 보니, 국내도성의 경관은 유리왕대 천도한 국내 위나암도성과는 거리가 있으며, 자칫 삼국사기 초기 기사를 신뢰하지 않는 빌미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초기 도성을 중기의 국내 도성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초기 도성을 졸본 도성과 국내 위나암성으로 보고 통화, 환인, 집안 일대의 고구려 초기의 생활유적과 분묘 등을 검토함으로써 선행 연구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에 접근하였다. 고고학 자료에 근거해 볼 때 고구려 초기 도성은 평지성과 방어적 성격의 산성으로 이루어졌다. 졸본 도성의 산성은 오녀산성으로, 초기의 오녀산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였고 성의 서부 일부를 활용한 것으로 보았다. 평지성은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초대형 적석총 조영을 기준으로 볼 때 졸본도성에서 국내로의 천도는 1세기 후반에서 2세기초 사이의 기간 중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적석총의 개체 수나 축조 기술로 미루어 볼 때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서 대규모 토목사업을 할 만한 노동력이 확보되지 못하였고, 인공 성벽을 축조할 만한 기술도 집적되지 못하였던 것에서 방증된다. 국내 위나암 도성의 평지성은 통구 분지의 마선구고분구역일대일 것으로 추정하였고, 건강유적을 그 후보지의 하나로 비정하였다. 위나암산성은 지형조건으로 미루어 환도산성으로 비정하였고, 환도산성도 오녀산성처럼 위나암 산성에 인공성벽이 더해지고 포곡식으로 내부 공간이 확대되어서 오늘날 환도산성의 경관이 완성된 것으로 상정하였다. 다만, 졸본도성에 비해 무기단적석총의 규모가 커졌고, 초대형 무기단적석총 간의 위계화가 이루어져 보다 중기의 국내도성과 졸본 도성의 과도기 모습을 보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고구려 초기의 도성의 경관은 문헌기록과는 달리 궁실과 여러 전각들, 제사시성, 관청을 아루르는 성벽을 가진 강력하고 배타적인 왕권을 상징하는 정치적 권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고구려 초기 도성은 지배력이 결집된 정치 중심지라기보다는 왕이 거주하는 상징적 공간이었을 것이다.

영문 초록

The aims of this paper ascertain that the formation of the early Koguryo Capital City was divided into two phases through archaeological remains. As the result of the material remains of southwestern Tonghua(통화), Huanren(환인) and Jian(집안) area estimated activity range of Early Koguryo, the early Capital City was comprised of the two fortresses in flat land and mountain. The flatland fortress was royal living space and the mountain fortress was defensive space against the outer enemy. The first early Capital city was Jolbon(졸본) which was comprised with the mountain fortress Onyeosan(오녀산성) and the flat plain fortress which was located the eastern area of the mountain fortress Onyeosan but probably was lost because of the natural and artificial transformation. The second early capital City was Yinaam(위나암). It was not well known but through the distribution of the extra large stone mound tombs estimated the royal tombs, area of the neighborhood of the range of Maxiangou(마선구) tombs will be the central of royal living space. The mountain fortress of the Yinaam Capital City was the portion of the mountain fortress Wandushan(환도산성) by the historic documents and the formation of the mountain fortress Wandushan. Therefore the landscape of the early Capital City of Koguryo was not shown the powerful and absolute authority of King, but it was not exceptional situation on the process of the State development. So that the collaborative study of documents and material remains is important in reconstruction of Early Koguryo.

목차

Ⅰ. 머리말
Ⅱ. 고구려 초기 유적 검토
Ⅲ. 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추론
1. 오녀산성과 졸본 도성의 경관
2. 국내 천도와 위나암 도성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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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Kang, Hyun-sook). (2015).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고고학적 추론. 역사문화연구, 56 ,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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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Kang, Hyun-sook). "고구려 초기 도성에 대한 몇 가지 고고학적 추론." 역사문화연구, 56.(2015):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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