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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고구려인의 화장과 장신구

이용수 825

영문명
Cosmetics and Jewelery of Koguryo People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전호태(Jeon, Ho-tae)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55집, 3~56쪽, 전체 54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5.09.30
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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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고구려인의 화장과 장신구에 대해서는 주로 고분벽화 인물도와 유적 출토 유물을 통해 내용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고분벽화 인물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 는 것은 여성들의 경우, 백분을 사용한 분칠로 얼굴을 희게 보이도록 한 뒤 그 위 에 붉은 색으로 연지, 곤지를 넣어 얼굴이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식의 화장법을 썼다는 사실이다. 무용이나 연주 등의 공연을 할 때에도 출연자들이 얼굴 화장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공연용 분장이 곡예에도 적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구려인이 사용하던 장신구들은 주로 유적 출토 유물 분석을 통해 용도, 종류, 시대에 따른 형식적 변화 등이 파악된다. 남자들이 사용하던 관모 장식 가운 데 일반적인 것은 두 갈래나 세 갈래 새 깃 모양의 것이다. 이 기본 장식에는 보요 등을 달아 멋을 냈다. 귀걸이는 금제 및 금동제가 일반적이다. 초기에는 고리 가 없는 것이 사용되었으나 4세기를 경계로 고리가 있는 것이 만들어져 애용되 었다. 고구려의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 귀걸이는 신라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6세기 초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고구려에서 장식성이 높은 띠고리와 띠꾸미개는 중국의 진과 삼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무늬를 넣은 띠꾸미개는 4세기 초부터 6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식으로 만들어지며 형식상 신라, 백 제의 것과 비교되는 것도 있다. 고구려의 금제 및 금동제 장신구 가운데 귀걸이는 다른 종류의 장신구에 비해 이른 시기부터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이는 6세기 초 이후 불상을 포함 한 금속제 불교미술품이 활발히 만들어지자 금의 사용처가 달라지면서 나타난 현 상으로 이해된다. 위신재 가운데 중요성이 떨어지는 귀걸이가 덜 만들어지고 금 제, 금동제 귀걸이가 사원에 시주되는 일은 7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에서도 일어났다.

영문 초록

We can study Koguryo people’s jewelery and cosmetics through portraitures in tomb murals and excavated artifacts. Tomb murals suggest that women used white powder to brighten the face and put red on cheeks and forehead for accents. Dancers or musicians also wear makeup and it is likely that such stage makeup applied to acrobatics performers also. Jewelery used by the Koguryo people are found mainly among excavated artifacts and we can find its purpose, types, and change throughout the time. The most general headgear decoration was two or three plume-shaped ones. The basic decoration was further elaborated with boyo(步搖) and such. Earrings are typically of gold or copper. The early earrings did not use rings but the later ones from the fourth century and on had rings. The thick earrings and thin earrings of Koguryo influenced Silla and developed in various ways until the early sixth century. Decorative belt buckles or belt charms were made from Chinese Chin(晋) and Yan(燕) influence. Belt charms with different patterns are produced from the early fourth century and the late sixth century and some are comparable to those of Silla and Baekje. Of Koguryo’s gold and copper jewelery, earrings show no new type since the early period. This is understood as the result of Buddhist influence. As Buddhist metalwork including statues began to be produced from the sixth century, gold began to be used in different products. Earrings that were less important as status symbol began to be produced in fewer number. In Silla also people offered gold and copper earrings to Buddhist temples from the seventh century.

목차

Ⅰ. 머리말
Ⅱ. 화장 기법과 재료
Ⅲ. 장신구의 종류와 형식
Ⅳ. 화장과 장신구로 본 고구려 문화
Ⅴ.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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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태(Jeon, Ho-tae). (2015).고구려인의 화장과 장신구. 역사문화연구, 55 ,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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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태(Jeon, Ho-tae). "고구려인의 화장과 장신구." 역사문화연구, 55.(2015):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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