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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兵書의 강의와 무학교육

이용수 417

영문명
Lecture of Military Tactics Book and Military Science Education of the Early Joseon Dynasty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윤훈표(Yoon, Hoon-pyo)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49집, 31~80쪽, 전체 49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4.02.28
8,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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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고려에서도 일찍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병서 강의와 무학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관직으로 무학박사를 설치했다. 그러나 국학 칠재 가운데 무학을 담당했던 강예재가 인종 때 혁파되면서 병서 강의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졌다. 말기에 이르러 상황이 변하면서 병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병서 강의와 그 교육을 국가에서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특히 위화도 회군 이후 정국을 이끌던 급진개혁파사대부들은 무과 실시를 통해 병서 강의의 실현 및 일반 병학 뿐만 아니라 기술학 계통의 특수 병과 요원들도 교육시켜 선발하는 체계를 갖추자고 했다. 여건상 조선으로 이월되면서 전반에 걸친 정비 작업이 추진되었다. 조선에 들어오자 개창 직전 추진했던 것을 곧 바로 실행했다. 즉위 교서를 반포하여 무과 실시를 선포하고 훈련관을 신설하여 『무경칠서』와 무예 기술 등을 교습하게 했다. 이로써 병서 강의를 제도화해서 무관 선발에 반영하는 체계가 구축되었다. 이어서 강의 방식과 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었다. 국가기구의 정비를 통해 일반 병학은 물론 잡학까지 포괄하는 강의 시스템을 확립하였다. 이윽고 교육과 선발 과정이 연계되는 무관 임용 제도를 수립하여 배경 보다 실력이 출세하는데 크게 작용하게 했다. 아울러 군에 잔재했던 사병적 속성을 제거하고 군사력을 향상시키며 일률적 지휘 통솔이 가능한 조직을 구축하고자 진법 훈련을 실시했다. 이를 주도했던 정도전은 교재를 만들어 내용을 강의해 이해를 높이는 한편 실습을 통해 숙달되도록 했다. 이에 대한 반발과 태조의 후계자 선정 문제가 중첩되면서 정치적 분쟁, 즉 왕자의 난이 발발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것은 국정의 운영 원리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병서 강의와 무학 교육 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새로 등장했던 태종 정권은 처음 무과를 실시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병서 강의 체계를 변모시켰다. 병학과 유학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며 선발과 교육 체계가 직접 연계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병서 강의와 진법 훈련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하면서 병학 습득이 상층 계층에 집중되도록 했다. 하지만 기술학 계통은 점차 소홀해졌다. 이로 인해 좁은 범주의 사람들만 필요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나머지 인원들이 외면하는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세종 때 기존의 방침과 노선을 재정비하면서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널리 익히는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 원리가 강의 내용과 교재 개발, 선발 절차 등의 과정에 구현되도록 했다. 다만 직책과 병종에 따라 수준의 차이를 두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운 것을 숙달하게 했다. 고관이 되려면 이전보다 풍부한 병학지식을 지녀 전문성을 갖춰야 했으며, 반대로 아래로 내려가면 기본에 더 충실하는 체계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세종 후반기부터 대내외 상황 바뀜과 특히 원정 나갔던 명나라 황제가 적에게 포로가 되는 토목보의 변이 발생하자 조야 모두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때까지 여러 병종을 신설하면서 군액을 증가시켰던 것에 더하여 다방면에 걸쳐 군비 강화를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강의 체계도 보강되어야 했다. 즉 조직 확대와 함께 자질 향상으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훈련과 교육 분야의 개편이 불가피했다. 다양한 병서를 간행하고 숙위 군사에까지 강의를 실시하는 등 외연을 넓히는 것과 더불어 전문가를 양성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로써 軍中에 병서 읽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세조 사후에 지나치게 과도해져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병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마침내 성종이 즉위하면서 인원의 축소와 함께 정예화를 추진하면서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군비 약화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특히 변화로 인해 자칫 병서 강의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에 교육 체계가 다시 개편되었다. 그 과정에서 병학의 충실한 이해를 위해 경사서도 함께 읽게 하는 방안이 제기돼 점차 힘을 얻으면서 시행되었다. 마침내 『대전속록』에도 그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이는 소수 정예의 무관선발에는 유용했을지라도 유학 위주의 풍토와 맞물려 무학의 전문화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마침내 사회 유교화의 진전과 결부되면서 병서 강의는 경사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로 인식되었다. 그로 인해 병학의 자체 진흥이 어려워졌다.

영문 초록

This study is to cover the lecture of military tactics book of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o analyze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military science education that progressed differently from the previous era. At the end of Goryeo dynasty, there were numerous opinions about vitalizing military science and selecting competent military generals. During the period of King Gongyangwang, so-called radical reformists led the political arena and tried to reform the structure of the military science education. However, it was realized when it entered the period of Joseon dynasty. Jung, Do-Jun mostly drove the whole movement. He tried to establish a national organization that exclusively covers the military science education. Through such organization, he tended to select one who has competence regardless of his family background and enlist one as a major military general in the new dynasty. However, as the dynasty was replaced due to the uprising of the Prince, the major initiative of the nation changed. As King Taejong ascended to the throne, the reform process progressed in a different direction. Along with the implementation of the military official examination, the military tactics book lecture and military science education system were modified. It focused on having the individuals playing the major role rather than a national organization leading the process. Accordingly, the military tactics book lecture was expanded and the military science education was also enhanced. First, lectures of studying military theory has begun. Also, lectures that helped transcending knowledge which could be adapted to the field was implemented. In terms of lecture textbooks, military tactics book developed exclusively in the Joseon dynasty was included as well as classic military tactics books from China. Additionally, military science education was systemized by categorizing it to the levels of the subjects. General soldiers took the basic level and was based on field study. Next for the middle level of soldiers, that is for professional soldiers, theory and practicality took half and half. Lastly, for the military generals who leads the military, pure theory was taught as well. Although it didn't go to the level of Confucianism, it taught the theory of military science to a level where one could actually speak about it in person. Conclusively, it can be said that the military science education has been organized in terms of system or implementation. However, there were some issues of excessive intervention from the nation etc.

목차

Ⅰ. 머리말
Ⅱ. 건국 직후 병서 강의의 체계화 시도
Ⅲ. 교육 목표의 재설정과 강의 체계의 변모
Ⅳ. 군비 강화에 따른 강의 체계의 개편과 그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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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훈표(Yoon, Hoon-pyo). (2014).조선 전기 兵書의 강의와 무학교육. 역사문화연구, 49 , 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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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훈표(Yoon, Hoon-pyo). "조선 전기 兵書의 강의와 무학교육." 역사문화연구, 49.(2014): 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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