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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禑王代의 정치적 추이와 圃隱 鄭夢周

이용수 684

영문명
Developments in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reign of King U and Jeong Mong-ju
발행기관
포은학회
저자명
이형우(Lee HyoungWoo)
간행물 정보
『포은학연구』제12집, 85~122쪽, 전체 37쪽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3.12.31
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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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정몽주는 공민왕대에는 순조로운 관료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왕원년 외교정책을 놓고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결과는 참담하였다. 목숨을 잃은 동료도 있고, 참여했던 대부분이 관직을 잃고 조정에서 쫓겨났다. 이후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몽주는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정몽주는 우왕대의 정치현실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이 이후 그의 정치 활동모습이라고 하겠다. 우왕대 집권세력의 제일 화두는 물론 권력의 공고화였다. 그 다음으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명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명의 사신이 살해당한 이후 명은 고압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조정에서는 꾸준하게 정성으로 사신을 파견하면서 공민왕의 시호(諡號)와 우왕의 왕위 계승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북방 정책은 공민왕대의 실리외교와 명목적인 사대외교를 병행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연립정권은 정권 유지에 눈이 멀어, 국익은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명의 요구에 끌려다니고만 있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몽주는 우선 일본 사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집권자들의 신임을 얻어 관직에 복귀하였다. 그 이후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어려웠던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조정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사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명에게서 '세공 감면'을 승낙받고 와서 집권세력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정몽주의 이런 외교적 활동은 단순하게 집권세력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국가 안정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정몽주는 외교 활동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면서 국내 정치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다져나갔다. 그것은 주로 그의 성리학적 소양에 바탕한 관직 활동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 특기할만한 사실은 이성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갔다는 점이다.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그들은 여러 차례 함께 했다. 그런 관계는 정몽주의 정치인으로서 삶에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그는 적절한 정치적 타협도 했다. 우왕, 최영과의 관계에서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고 평가받는 당시 집권세력에게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는 것이다. 정몽주는 우왕 원년 잠시 정치적 좌절을 겪은 이후 실속 있는 외교 활동과 활발한 국내 정치활동을 통해 우왕대를 성공적인 정치인으로서 보낼 수 있었다. 그의 그런 활약에도 격변기를 살아간 정치인 정몽주에게 더 바라고 싶었던 것은 첫째,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명과의 외교정책을 보다 실리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대안 제시, 둘째 집권세력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다. 그러나 우왕대 신진사류들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정몽주 개인에게만 그런 기대를 한 것은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문 초록

Jeong Mong-ju had a smooth bureaucratic life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But he challenged the power elites in the first year of King U regarding diplomatic policy. Results were terrible. The New Scholar-Officials suffered severe political setbacks and many were exiled. Since then for about 2 years Jeong Mong-ju withdrew from office. During this time he agonized much over the reality of politics of the reign of King U. His later political activities are the result of the ponderance. The key topic of the ruling forces in the reign of King U was the consolidaton of power. The next of importance was the recovery of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Ming dynasty. After their envoy had been murdered, Ming was maintaining an overbearing manner. Nevertheless the court of Goryeo constantly dispatched their envoy with all their heart for the acknowledgement of King Gongmin's Siho(諡號:Posthumous Honorific Title Given by the Ming Court) and King U's Seungseup(承襲:Inherit the throne). It was time for the northward policy to be established in the direction of combining practical diplomacy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with nominal flunkyism diplomacy during the reign of King U. But because the coalition government was blind with regime maintenance, they unilaterally bowed to Ming's demand, ignoring national interest. During such period, Jeong Mong-ju at first gained the confidence of the people in power and reentered the public office by successfully accomplishing 일본사행. After that time, whenever there was a request from the court, which had a hard time unraveling relations with Ming, he himself carried out the role of the envoy. In that process he lessened agony of the ruling party by being given permission from Ming to reduct 세공. Such diplomatic activities by Jeong Mong-ju were not only for the ruling party but also for the stability of state and the safety of the people. While showing outstanding performance in diplomacy, Jeong Mong-ju also laid foundation in domestic politics. This was mainly shown regarding public office activities based on his neo-confucianism knowledge. And what is also noteworthy besides this is that he maintained a close association with Yi Seong-gye. They were together in the battlefield for several times where they were hung between life and death. Such relationship was helpful for Jeong Mong-ju as a politician. Moreover he also made appropriate political compromise. This could be seen in the relation between King U and Choe Yeong. In this regard, it is disappointing that he did not directly criticize the ruling party at that time, whom are evaluated as having been consistently corrupt. After Jeong Mong-ju had experienced a political setback for a moment in the first year of King U, he was able to spend time as a successful politician in the reign of King U by engaging in solid diplomacy and active domestic politics. In spite of such active work done, what could have been more desired from him who was politician that lived in political rapid changes are firstly, suggestion of an alternative to manage the diplomatic policy more practically with Ming, with whom we unilaterally suffered from, and secondly, appropriate criticism towards the coalition government which was the ruling party. However, since it is hard to find a person who played such a role among the New Scholar-Officials during the reign of King U, it also seems unreasonable to look for such behavior in Jeong Mong-ju as an individual.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우왕 초기의 북방 정책과 정몽주
3. 우왕대 정몽주의 외교 활동과 그 의미
4. 우왕대 정몽주의 국내 정치활동과 그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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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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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Lee HyoungWoo). (2013).고려 禑王代의 정치적 추이와 圃隱 鄭夢周. 포은학연구, 12 , 8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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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Lee HyoungWoo). "고려 禑王代의 정치적 추이와 圃隱 鄭夢周." 포은학연구, 12.(2013): 8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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