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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910~20년대 조선총독부의 간이생명보험 제도 이식 과정과 특징

이용수 37

영문명
The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the Introduction of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by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the 1910s and 1920s
발행기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구병준
간행물 정보
『동국사학』제79집, 309~351쪽, 전체 43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04.30
7,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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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1916년 일본에서 간이보험 제도가 창설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도 간이보험 제도를 실시하고자 했다. 특히 1910년대 총독부가 재정독립계획을 추진하면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할 수단으로 간이보험 제도가 주목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간이보험 제도를 조선과 대만 등의 식민지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일본과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간이보험 제도를 즉각 실시하고자 했다. 일본 정부와 총독부의 구상이 엇갈린 가운데, 데라우치 총독이 총리대신으로 취임하면서 조선의 간이보험 ‘분리안’ 추진은 중단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총독부의 재정독립계획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정부는 재정을 재해복구에 집중시켰고, 그에 따라 대장성 예금부에서 조선으로 공급하던 저리자금도 고갈되었다. 조세나 공채 등의 재정 충당 방식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본 대장성은 조선에서 간이보험 제도를 통해 자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관동주, 대만과 마찬가지로 일본 간이보험 제도를 확장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대장성의 ‘확장안’과 간이보험 제도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총독부의 ‘분리안’이 다시 대립했다. 1910년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으로의 간이보험 제도 도입이 무산될 수도 있었지만, ‘확장안’을 주장한 가타오카 대장대신의 이임, 그리고 다나카 총리대신의 신임을 받는 야마나시 총독과 이케가미 정무총감의 부임 이후 ‘분리안’이 통과되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간이보험 제도 도입 과정을 통해 살펴본 일본 정부와 총독부의 관계는 자율적이기보다는 종속적이었다. 그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총독부의 재정 운영은 일본 정부의 재정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다. 1910년대에는 일본 정부로부터의 보충금 지급이 중단되는 재정독립계획으로 인해, 그리고 1920년대에는 관동대지진 이후의 재해복구로 인해 간이보험을 통해 재정을 충당한다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둘째, 총독부의 정책은 내각 교체와 같은 일본의 정치 변동에 의해 결정되었다. 총독부의간이보험 제도 도입 시도는 1910년대에는 데라우치 총독의 이임으로 무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대장대신 이임과 총독 및 정무총감 교체 이후 관철되었다.

영문 초록

When Japan established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in 1916,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sought to implement it in Korea as well. Particularly in the 1910s, while pursuing financial independence plans, the Government-General aimed to utilize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as a means to offset financial shortages. At the time, the Japanese government had plans to expand its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to colonies like Korea and Taiwan. However, the Government-General sought to independently implement the system apart from Japan. Amid conflicting plans between Japan and the Government-General, the pursuit of the “seperate plan” for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in Korea was halted with the appointment of Governor-General Derauchi as Prime Minister.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the Government-General’s plans for financial independence were suspended. However, following the Kanto Earthquake in 1923, the Japanese government focused on financial recovery efforts, leading to the depletion of funds supplied to Korea from the Imperial Treasury for disaster relief. With other financial means like taxation or public bonds not viable options, the Japanese Imperial Treasury demanded that Korea secure funds through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However, conflicting visions emerged again between the Imperial Treasury’s proposal for expanding Japan’s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to Korea, similar to Kanto and Taiwan, and the Government-General’s insistence on operating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autonomously. Just as in the 1910s, the introduction of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to Korea faced uncertainty, but with the support of Governor Yamnashi, who advocated for the “expansion plan,” and the appointment of Governor-General Yamagata and Chief Secretary Ikegami, the “separate plan” was eventually approved. Upon examining the process of introducing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in the 1910s and 1920s reveals a relationship between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 Government-General that was more dependent than autonomous. Specific characteristics of this relationship include: Firstly, the financial operations of the Government-General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financial situa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In the 1910s, the Government-General’s financial independence plan led to the discontinuation of supplemental payments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while in the 1920s, plans were made to offset finances through Postal Life Insurance following the Kanto Earthquake. Secondly, the policies of the Government-General were determined by political changes in Japan, such as cabinet reshuffles. Attempts to introduce the Postal Life Insurance system by the Government-General were thwarted in the 1910s with Governor Derauchi’s resignation, but were accomplished in the 1920s following changes in leadership.

목차

Ⅰ. 머리말
Ⅱ. 1910년대 일본 간이보험 실시와 조선총독부의 도입 시도
1. 조선총독부 재정독립계획 실시와 자금난 발생
2. 데라우치 총독 시기 간이보험 ‘분리안’ 추진과 법령 제정 무산
Ⅲ. 1920년대 간이보험 법령 제정과 대장성·체신성의 개입
1. 관동대지진 이후 예금부 자금 고갈
2. 대장성의 자체 자금 조달 요구와 간이보험 법령 제정 재추진
3. 내각·총독 인사 교체와 ‘분리안’ 허용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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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준. (2024).1910~20년대 조선총독부의 간이생명보험 제도 이식 과정과 특징. 동국사학, (), 30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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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준. "1910~20년대 조선총독부의 간이생명보험 제도 이식 과정과 특징." 동국사학, (2024): 30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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