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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양주별산대놀이의 전승집단과 지역공동체 문화와의 관련성

이용수 54

영문명
발행기관
한국구비문학회
저자명
정형호
간행물 정보
『구비문학연구』제21집, 127~164쪽, 전체 38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5.01.01
7,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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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양주별산대놀이가 전승되는 유양리 지역은 읍치지역의 성격을 지니며, 1800년 전후로 서울의 본산대를 이식하여, 이 놀이를 지역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성장시켰다. 따라서 이곳은 문화적 수용성과 놀이적 신명이 강한 곳이다. 시대에 따라 官과 民의 역할, 상업성 여부, 생업의 변화, 종교와의 관련성에 따라 변모 양상을 보인다. 19c 이후 탈놀이의 전승집단과 공동체의 관계를 시기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19c는 관과 민의 밀접한 관련 속에 산대놀이가 지역 공동체 문화로 정착이 되었다. 연희의 주도층은 관아의 하급 잡역부와 상인층이었다. 한편 초파일 공연의 실시와 巫系의 핵심적 참여로 보아 무속,불교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녔다. 따라서 탈놀이는 지역의 세시적 대동놀이로 전승되었다. 갑오경장 이후 1920년대까지의 시기는 탈놀이가 민 중심의 상업적 성격을 지니며, 지역 공동체문화의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지역의 판주와 상인층이 주도하면서 난장도 형성되었다. 또한 종교적 성격이 약화되고 연희 시기가 다양화되어, 상대적으로 놀이성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일시 외부 공연이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양주의 탈놀이는 지역의 세시적 대동놀이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했다. 1930년대 이후의 일제 후반기는 일제의 억압에 의해 세시적 공연이 중단되고, 마을이 빈한한 농촌마을로 바뀌게 되어 전승이 침체되었다. 당시 탈놀이는 일부 주민들의 내적 욕구에 의해 자발적인 신명풀이의 형태로 전승되었다. 해방부터 1964년까지는 복원과 중단이 반복되면서 전승력이 약화되어 갔다. 해방 후에 비세시적인 상업적 공연으로의 복원 조짐은 전쟁으로 타격을 입었으며, 탈놀이는 지역 문화의 구심체에서 마을 단위의 놀이로 축소되었고, 공동체적 성격도 약화되었다. 문화재 지정 이후는 관의 재정적 지원이 증가하면서 체계적 전승이 이루어지고, 외지인을 위한 공연도 늘었다. 하지만 관의 영향력 증가와 자체 전승 기반의 약화,탈지역화 현상으로 인해 지역민의 공동체 문화로서의 위상은 거의 상실되었다. 결국 통시적 접근을 통해 보면, 양주의 탈놀이는 관과의 적절한 관계의 모색, 새로운 형태의 지역적 기반의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영문 초록

목차

1. 머리말
2. 양주별산대놀이의 정착과 전승배경
3. 시대별 전승집단과 공동체 문화의 관련 양상
1) 19c : 민⋅관 밀착에 의한 지역 공동체 문화로 정착의 시기
2) 20c 초반기 : 민 주도에 의한 상업적 성격의 지역 공동체 문화의 시기
3) 일제 후반기 : 공연 중단에 의한 자생적 전승 유지의 시기
4) 해방 이후 : 전승력 저하로 인한 지역 공동체 문화의 약화 시기
5) 문화재 지정 이후 : 관의 개입과 탈양주화로 인한 지역성 탈피의 시기
4.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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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호. (2005).양주별산대놀이의 전승집단과 지역공동체 문화와의 관련성. 구비문학연구, 21 , 12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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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호. "양주별산대놀이의 전승집단과 지역공동체 문화와의 관련성." 구비문학연구, 21.(2005): 12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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