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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시문으로 읽어보는 서산 남태보의 목민관상

이용수 184

영문명
Nam Taebo's imagery as provincial ministers through the reading of poetry and prose
발행기관
대동한문학회
저자명
이의강(Eui-gang Lee)
간행물 정보
『대동한문학』第80輯, 73~100쪽, 전체 28쪽
주제분류
어문학 > 한국어와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09.30
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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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고는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목민관으로 빼어난 업적을 이룩했던 南泰普(1694~1773)를 조명한 것이다. 남태보는 10여 년 동안 두 차례 목민관으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정리한 邑誌 『赤羅誌』와 『金馬志』를 편찬하는 업적을 남겼던 인물이다. 본문의 내용은 우선 오늘날 집적되어 있는 역사 정보 데이터를 활용하여 남태보의 생애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고, 이어 그와 관련된 詩文의 내용을 분석하여 循吏로서의 목민관상을 규명하는 순서로 서술하였다. 목민관뿐만 아니라 지방 읍지를 편찬한 문헌학자로서의 업적을 남긴 남태보라는 역사적 인물이 지방 문화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던 인물로 부각되기를 희망한다. 남태보의 이력을 정리하면, 과거 시험에 42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가 되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끝내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해 51세부터는 음직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이후 경관직에서 4년 동안 근무하였고, 55세부터는 10년 동안 고을을 다스리는 목민관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국왕에게 업적을 칭찬 받았다. 66세부터 세상을 떠나는 80세까지는 고향 양평에서 노년을 보내며 조정으로부터 지속적인 예우를 받았다. 남태보가 군위 현감과 익산 군수로 재직할 때 형성했던 목민관 형상을 詩文을 통해 읽어 보았다. 군위에서는 자신에게 치밀하고 타인에게 소탈한 성품으로 백성을 인도하는 목민관이었고, 익산에서는 뛰어난 능력과 청렴으로 위엄을 갖추어 향리와 백성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목민관이었다. 군위에 남아 있는 磨崖 善政碑는 남태보의 治積에 부합하는 것이었음을 물론 군위 산촌 백성들의 어려운 경제 형편에도 어울리는 형식이었다. 또한 익산 군민들이 길을 메우고 미륵산 정상까지 올라가 눈물로 남태보를 전송하였다는 신광수의 <금마별가> 내용은 그의 상상력에 의한 표현이었지만 실제 상황도 그러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조 치하의 18세기 조선 사회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남태보와 같은 뛰어난 목민관들이 국가 체제의 기초였던 향촌 사회를 지탱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focuses on Nam Tae-bo(1694~1773), who achieved outstanding achievements as a village official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18th century. During his two terms as a village governor, he served the people well, and he compiled the “赤羅誌” and the “金馬志”, which summarised the culture and history of the region. The content of the thesis firstly details the life of Nam Taebo, and then analyses the content of his poetry to identify his view of the pastoralist as a shunli. It is hoped that this paper will highlight his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the diversity and uniqueness of local culture. Nam Tae Bo passed the first past examination at the late age of 42, but failed the second past examination. As a result, he was granted a tutelage in recognition of his ancestors' merits and began his tutelage at the age of 51. He then served in the central government for four years, and from the age of 55, he served with distinction as a village governor for 10 years. From the age of 66 to 80, he spent his old age in his hometown of Yangpyeong, where he received constant honours from the ruler. During his time as prefect of Gunwei, Nam Tae-bo was a minister who guided his people with his own sophistication and gentle disposition, and during his time as county governor of Iksan, he was a minister who elicited the co-operation of his people with his ability and integrity. The contents of the monument to Maae, which remains in Gungwi, Gyeongsangbuk-do, were in line with Nam Tae-bo's achievements, and the monument was in a form that suited the difficult economic conditions of the people in the mountain villages of Gungwi. In addition, Shin Kwang-soo's “金馬別歌”, which states that the people of Iksan made a road, climbed to the top of Mt. Mireuksan, and sent Nam Tae-bo with tears, must have been the actual situation. The relative stability and development of Joseon society in the 18th century under the reign of King Yeongjo was made possible by the fact that outstanding ministers like Nam Taebo supported the local village society, which was the foundation of the state system.

목차

1. 머리말
2. 가계와 이력
3. 循吏로서의 목민관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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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강(Eui-gang Lee). (2024).시문으로 읽어보는 서산 남태보의 목민관상. 대동한문학, (), 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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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강(Eui-gang Lee). "시문으로 읽어보는 서산 남태보의 목민관상." 대동한문학, (2024): 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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