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진경대사탑비의 새로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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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A Study on -A new interpretation of the Monument to the Buddhist Master Jingyeong: The reality of the Imna royal family and the location of Imna, the ancestors of Master Jingyeong
- 발행기관
- 바른역사학술원
- 저자명
- 심우섭(Woo-seop Shim) 강영규(Young-gyu Kang)
- 간행물 정보
- 『역사와 융합』제18호, 37~82쪽, 전체 4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기타인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02.29
8,3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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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본 연구는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 탑의 비문에 있는 ‘임나왕족 초발성지(任那王族 草拔聖枝)’에 관한 연구이다. 과거 일제는 이 비문의 내용에 따라 한반도를 자신의 옛 영토라 주장했다. 또한 <임나일본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일본과 국내 학자들 또한 위의 내용에 의거해 흥무대왕 김유신을 임나왕족의 조상으로 잘못 해석한다. 그런데 이처럼 그들이 비문을 잘못해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를 침략하려는 명분인 ‘정한론’으로 임나가 곧 가야이니 일제가 임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잘못된 논리로 비약시켰던 것이었다..
‘任那王族 草拔聖枝’는 ‘임나의 왕족 초발성지’로 해석해야 하며 ‘초발성지’를 인물로 보아야 한다. 초발성지는 일본 내에 있었던 임나의 왕족이었으며 주변국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았다. 또한 그가 투신한 대상이 국가로는 신라이지만 실제적 대상으로는 국가가 아닌 사람 즉 흥무대왕 김유신이었다. 즉 임나왕족 초발성지가 김유신에게 투신하고 신라왕으로부터 신김(新金)씨를 내려 받았던 것이다.
나중에 그의 후손들은 신라 땅에 잘 뿌리내린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결과 8,9세기 비문과 찰주에 나타난 3인의 신김씨와 10세기의 진경대사와 같은 걸출한 선승을 배출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위의 논거에 따라 가야와 임나는 전혀 별개의 나라였고, 임나는 일본 내에 있었던 나라였음이 본 고를 통해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영문 초록
This study is about the ‘Imna royal family Chobalseongji (任那王族草拔聖枝)’ found in the epitaph of Buddhist Master Jingyeong. In the past, Japan claimed the Korean Peninsula as its former territory according to the contents of this inscription. In addition, Japanese and domestic scholars who directly or indirectly support also misinterpret King Heungmu Kim Yu-sin as the ancestor of the Imna royal family based on the above information. However, there was a reason why they misinterpreted the inscription. It was a justification for invading the Korean peninsula called the ‘Jeonghan theory’ or ‘Japan's strategy for conquering Joseon’, which leapt to the wrong logic that it was justified for Japan to restore the Imna homeland since the Imna is the Gaya.
‘任那王族草拔聖枝’ should be interpreted as ‘Imna’s royal family Chobalseongji’ and ‘Chobalseongji’ should be viewed as a person.
The Chobalseongji was the royal family of Imna in Japan, and they were harassed by neighboring countries. In addition, although the target of his surrender was Silla as a nation, the actual target was not a nation; it was King Heungmu Kim Yu-Sin. In other words, Chobalseongji of the Imna royal family surrendered himself to Kim Yu-sin and received the Shin Kim (新金) clan from the King of Silla.
Later, his descendants appear to have taken root well in the land of Silla. As a result, it became the foundation for producing great figures such as the three members of the Shin Kim clan shown in epitaphs and chalju(a pillar) in the 8th and 9th centuries and Great Monk Jingyeong in the 10th century. Based on the above argument, we hope that this study will make it clear that the Gaya and the Imna were completely separate countries, and that Imna was a country within Japan.
목차
1. 들어가는 말
2. 펼치는 말
3. 정리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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