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허왕후는 만들어진 신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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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Is Queen Heo a myth created: A Critical Review of Queen Heo's Mythology by Kim Tae-sik and Lee Kwang-soo
- 발행기관
- 바른역사학술원
- 저자명
- 김명옥(Myungok Kim)
- 간행물 정보
- 『역사와 융합』제17호, 113~146쪽, 전체 34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기타인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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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글은 김태식과 이광수 등이 허왕후 신화를 7~8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논박이다. 김태식과 이광수 등은 허왕후 신화는 7~8세기에만들어졌고 금관지주사가 《개황력》을 쓸 당시에 몇몇 요소들을 추가해 그신화의 형태를 갖췄으며 이후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면서 〈가락국기〉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고추론만 있었다.
당시 인도의 항해 기술과 기록들, 2세기에 주조된 2개의 돗대가 새겨진 동전 등은 인도의 활발한 해상무역을 말해준다. 또 봉황동에서 출토된 ‘선실칸막이 격벽’은 가야의 항해기술을 보여 준다. 즉 기록과 유물은 인도와 가야의 해상 교역을 시사하는 한편,《삼국유사》의 기록처럼 허왕후가 해상을통해 가야에 도래했음을 말해준 것이다. 파사석탑과 〈김해월명사적비〉 명문은 허왕후의 도래와 가야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증거물이다. 〈김해월명사적비〉에는 서기 144년 3월에 월명사가 창건되었음을명시하고 있다. 또 민중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유래담을 통해 김수로와허왕후가 그들의 선조라고 전승하고 있다.
기록과 유물들 그리고 민중의 기억은 모두 허왕후가 서기 48년에 가야에도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태식과 이광수 그리고 백승충 등은 서기 48년에 허왕후가 도래했음을 부정한다. 그들이 허왕후 실존성을 부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야=임나’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가야=임나’가 되려면가야는 42년에 건국되어서는 안 되고, 48년에 허왕후가 도래해서도 안 된다. 허왕후의 도래를 인정하면 가야의 세계(世系)를 인정해야하고 가야불교도 인정해야 함으로 임나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has the character of refutation to Kim Tae-sik and Lee Kwang-soo's claim that Queen Heo's mythology was created in the 7th and 8th centuries. Kim Tae-sik and other Lee Kwang-soo consistently claim that Queen Heo's mythology was created in the 7th to 8th centuries, and that several elements were added to the myth when KumGwanJujisa wrote the “Gaehwangnyaku,” and later Ilyeon entered Garakgukgi while compiling “Samkukyusa” Their claims were groundless, only inferences.
India's navigation techniques and records at that time, and coins engraved with two sword poles cast in the 2nd century show India's active maritime trade. In addition, the cabin partition wall excavated from Bonghwang-dong shows Gaya's navigation technology. In other words, records and relics suggest maritime trade between India and Gaya. Therefore, as recorded in “Samkukyusa” it shows that Queen Heo arrived at Gaya through the sea. On the other hand, the inscriptions on the Pasa Stone Pagoda and “Gimhae Wolmyeong Historic Site Monument” are concrete evidence that Queen Heo's arrival and Buddhism were introduced to Gaya. The Gimhae Wolmyeong Historic Site Monument clearly states that Wolmyeong Temple was founded in March 144 AD. In addition, the people say that Kim Su-ro and Heo empress are their ancestors through the origin story of Gimhae Kim and Gimhae Heo.
Records, relics, and people's memories are all said to have come to Gaya in 48 AD. However, Kim Tae-sik, Lee Kwang-soo, and Baek Seung-chun deny the arrival of Queen Heo in 48 AD. The fundamental reason why they denied Queen Heo's existence was to claim that “Gaya = Imna.” In order to become “Gaya = Imna,” Gaya must not be founded in 42 and Queen Heo must not arrive in 1948. This is because when Queen Heo comes, the world of Gaya must be recognized and Gaya Buddhism must be recognized, so there is no place for Imna to stand.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삼국유사》 소재 허왕후 신화 분석
3. 허왕후 신화 후대 창작설에 대한 비판
4. 허왕후와 가야불교를 허구라 주장하는 이유
5.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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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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