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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唐代) 능사(陵寺)와 황실(皇室) 공덕사(功德寺)

이용수 119

영문명
The Buddhist Monasteries for Emperor tombs and Good deeds Monasteries in the Tang Dynasty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저자명
정순모
간행물 정보
『백제연구』제77집, 159~185쪽, 전체 27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3.02.28
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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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唐 玄宗은 불교 통제를 강화하여 전국적으로 동일 명칭의 開元寺와 龍興寺 두 官寺를 설립하였고, 각각 자신의 생일과 조상 추복을 위한 國忌日 행사를 거행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황제가 불교를 완전히 통제했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 논문은 龍興寺가 황실 조상을 추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경위를 탐구하기 위해, 당초부터 조상 추복을 위해 설립한 陵寺와 功德寺의 실상을 검토하고자 한 것이다. 唐 皇室은 조상으로 老子를 존숭하였고 비록 武則天시기 불교가 일시 우위에 있었어도 道先佛後 정책이 기본 방침이었다. 이 때문에 陵寺의 건립은 크게 제약받았고 隋의 능사 건립 관례를 계승하기 어려웠다. 다만 불교가 사회 저변에 폭넓게 신봉되었던 현실을 배경으로 황제는 정치적 동기나 葬祭 관례, 혹은 개인적 신앙과 효심에 기인해 능사를 건립하였다. 昭陵 역내의 瑤臺寺와 寺名을 알 수 없는 최소 한 곳 이상, 延光陵·建昌陵의 光業寺 등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황제와 황실 구성원의 추복을 위한 功德寺는 長安城을 중심으로 다수 설립되었다. 추복의 대상은 高祖·太宗·高宗·武則天 4명의 황제를 찾아볼 수 있고, 황실 구성원은 皇后·王子·公主 등이었다. 공덕사의 설립 시기는 대부분 玄宗 이전에 집중되었고 그 이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官僚士人들이 無爲 등을 논거로 사원 건립으로 야기될 인력 동원과 재정적 폐해를 지속적으로 지적한 것과 더불어 玄宗의 佛敎 통제에 따른 결과였다. 특히 兩京지역은 龍興寺에서 國忌日 행사를 거행하게 함으로써 功德寺의 추가적 설립을 최대한 억제하였다. 龍興寺에서 국기일 행사를 거행한 것은 분명 황제권의 선양과 불교를 통제했던 상징적 조치였다. 단지 亡者를 추복하는 사원이 증가하고 일상화되었던 현실이 용흥사의 설립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禪宗의 발흥으로 불교가 중국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게 되면서 宋代에 이르러 불교는 완전히 중국문화로 융화되었고 자연히 陵寺와 功德寺도 다수 건립되었다. 이런 점에서 唐宋변혁을 불교에서 유교 중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은 재고해야 한다.

영문 초록

Emperor Xuanzong strengthened Buddhist control and established nationwide two government monasteries of the same names : the Kaiyuan and Longxing monasteries. He made the monastery to hold national events to commemorate his birthday and for the imperial ancestors’ memorial service. These measures succeeded in symbolize the Emperor's complete control over Buddhism. This thesis aims to examine Buddhist monasteries for Emperor tombs and Good deeds monasteries which were established for posthumous well-being the ancestors to explore how the Longxing monasteries was used as a space for memorial service of the imperial ancestors. The Tang Imperial family respected Laozi. Although Buddhism was prioritized temporarily during the reign of Wuzetian, Daoism prioritization was the basic policy. As a result, construction of Buddhist monasteries for Emperor tombs was restricted. This made the Tang imperial dynasty difficult to inherit the customs of the Sui dynasty. However, emperors built Buddhist monasteries and temples for Emperor tombs based on political motives, customs of ancestral rites, or personal faith and filial piety. Temples such as Yaotai Temple in the Zhaoling area, Guangye Temple in yanguangling and jianchangling area, and an nameless temple are the evidence of the emperor’s effort to respond to the prevalent Buddhist adherence. Several number of Good deeds monasteries for the memorial service of emperors and the imperial family were established in the capital Changan. Emperors Gaozu·Taizong·Gaozong·Wuzetian and members of the imperial family such as the empresses·princes·princesses were the subject of the memorial service. While the establishment period of Good deeds monasteries was mostly concentrated before Emperor Xuanzong's reign, monasteries were scarcely built after Xuanzong. The government's control over Buddhism was the cause for this, along with the officials’ caution of the mobilization of manpower and financial harm that monastery construction will bring on the grounds of Laozi’s political philosophy ‘inaction’. Longxing monasteries in Changan and Luoyang limited the additional establishment of Good deeds monasteries. Holding of the National memorial day ceremony at Longxing monasteries was clearly a symbolic measure to promote the emperor’s authority and control Buddhism. However, it is difficult to dismiss the fact that the increasing establishment of monasteries and temples seeking well-being for the deceased and its growing presence in people’s daily live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Longxing monasteries. The rise of Zen Buddhism was a catalyst to root Buddhism into the Chinese society. And Buddhism was completely integrated into Chinese culture in the Song Dynasty. Naturally, many Buddhist monasteries and temples for Emperor tombs and Good deeds monasteries were built. In this respect, it is necessary to reconsider that the transition from Buddhism to Confucianism is the point of the Tang-Song transformation.

목차

Ⅰ. 머 리 말
Ⅱ. 老子 존숭과 陵寺의 건립
Ⅲ. 皇室의 功德寺 설립과 龍興寺
Ⅳ. 맺 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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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모. (2023).당대(唐代) 능사(陵寺)와 황실(皇室) 공덕사(功德寺). 백제연구, (), 15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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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모. "당대(唐代) 능사(陵寺)와 황실(皇室) 공덕사(功德寺)." 백제연구, (2023): 15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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