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학술논문

도선국사 옥룡사 탑비의 설립지연과 풍수정치

이용수 112

영문명
The study of background of delaying establishment of Dosun`s Tower and Fengshui Politics
발행기관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자명
민병삼(Min Byeong Sam) 박경숙(Park Kyung Sook)
간행물 정보
『민족문화논총』제71집, 89~116쪽, 전체 28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9.04.30
6,160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본 논문은 도선국사 광양 옥룡사탑비의 설립이 지연된 연유에 관련한 풍수지리와 정치에 관한 연구이다. 도선은 일반적인 승려로서 송악에서 왕륭과의 만남은 그의 집터 선정에 있어서 도선이 풍수적으로 조언하면서 시작되었다. 도선은 자신의 풍수적 도움으로 왕륭의 집터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정확한 혈처에 건립하도록 도움을 주고 그 집에서 삼한을 통일할 대업을 이룰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왕건이라고 지어주었다. 그 후 도선의 예언대로 그 집터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왕건이라 이름하였다. 도선은 그가 장성하자 다시 송악을 찾아 그에게 새로운 국가를 개창 할 수 있도록 천문·지리·병법을 전해주었다.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도선의 의견에 따라서 국토의 지기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산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워진 사찰들은 훼손하지 말라고 후대 왕들에게 당부하였다. 그런데, 인종시대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은 불에 타고, 왕권은 극도로 추락하여 이자겸에게 선양하려는 할 정도로 위태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종은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전 국토의 산신께 제사를 지내고, 고려의 개국에 일조한 도선국사 탑비를 설립하도록 아들 의종에게 유훈을 남기었다. 의종은 도선국사 사후 275년 만에 최유청에게 도선국사 탑비의 비문을 완성하여 1149년에 탑비를 만들어 글을 돌에 새기게 하였지만, 최유청이 대령후 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정치에서 멀어지자 도선의 탑비는 20여 년간 개경의 국연당에 방치되었다. 이후 정치가 안정되자 최유청이 참가한 가운데 도선의 탑비가 275년 만에 옥룡사에 세워진다. 이와 같이 산천의 지기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풍수적으로 선정한 사찰과 도선국사는 고려왕조에서 불안한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풍수를 정치에 활용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도선이 풍수를 배우게 된 동기는 옥룡사에 주석하기 전 지리산의 암자에서 수행할 때, 꿈에서 계시를 받고 구례현 인근 사도촌에서 가서 형세를 기초한 물형풍수를 배웠다. 그는 음양오행의 술법을 더욱 공부하여 국토를 물형으로 해석하는 물형풍수와 음양오행의 술법을 접목한 도선국사의 풍수사상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국에 확대되어 한국풍수의 근간이 되었다.

영문 초록

The study of Dosun s Tower(道詵國師塔碑) wire embedded in the background and establishment with Dosun s fengshui. The Dosun s Tower is the only evidence that could have seen the birth and life of Dosun. After the death of affairs leads the inscriptions engraved in stone tower built in only 252 years. And The reasons why the Dosun s Tower was established in delaying just 275 years background in the temple of Okryongsa(玉龍寺) of Gwangyang. The throne was unprecedented fall in the extremely in the king In-jong(仁宗) of Koryo dynasty. When In-jong(仁宗) grows adults they were trying to remove the Lee-jagyeom(李資謙) to recover the throne. But the race was a failure, Lee-jagyeom to the palace on fire. In-jong would like to give up the throne to transfer to the Lee-jagyeom, so kingship was in an extremely fragile(王權危險). When the king In-jong(仁宗) was thought to undermine the fengshui in the Hunyosipjo(訓要十條) of King Taejo Wang Geon that the kingship be struck at risk. It is testament of King In-jong to the Uijong(毅宗) was a Prince to establish the Dosun s Tower to overcome a difficult situation of the throne and to prolong the life of the Goryeo Dynasty, although after 252 years passed since the death of the Dosun. This is the background of reason why Dosun s Tower(道詵國師塔碑) established long after the death of Dosun. The Dosun s Tower(道詵國師塔碑) was built in Okryongsa(玉龍寺) in Gwangyang(光陽) 275 years later than death of Dosun due to various political circumstances. The Kings of Koryo used Fengshui and Dosun to stabilize the purpose of using it in politics to consolidate the political foundation of the Koryo dynasty.

목차

Ⅰ. 서론
Ⅱ. 도선국사의 생애와 행적
Ⅲ. 도선과 고려세조·태조와의 만남
Ⅳ. 도선국사 옥룡사 탑비의 설립지연과 정치적 이유
Ⅴ. 결론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참고문헌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교보e캐시 1,000원
TOP
인용하기
APA

민병삼(Min Byeong Sam),박경숙(Park Kyung Sook). (2019).도선국사 옥룡사 탑비의 설립지연과 풍수정치. 민족문화논총, 71 , 89-116

MLA

민병삼(Min Byeong Sam),박경숙(Park Kyung Sook). "도선국사 옥룡사 탑비의 설립지연과 풍수정치." 민족문화논총, 71.(2019): 89-116

결제완료
e캐시 원 결제 계속 하시겠습니까?
교보 e캐시 간편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