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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국사에서 해양정신

이용수 146

영문명
발행기관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저자명
신복룡
간행물 정보
『이순신연구논총』제2호, 1~21쪽, 전체 21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4.07.17
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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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세계의 각 민족에게는 나름대로의 신화가 있다. 이러한 신화는 민족 정신(national ethos)으로 승화되어 국난기에는 민중들이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고, 평화시에는 발전의 활력이 되는 동시에 낭만적인 추억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에는 나폴레옹 제국의 신화가 있고, 북구 민족들에게는 바이킹의 신화가 있으며, 미국인들에게는 메이 훌라워호(May Flower)의 신화가 있고, 이탈리아와 그리스인들에게는 고대 문명의 신화가 있으며, 중국인들에게는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는 중화주의적 신화가 있다. 이와 같은 신화들은 그들 민족이 환난에 빠졌을 때 뭉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미래의 발전을 기약하는 등불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어떠한 신화가 있는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를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끈질지게 설득해온 신화는 우리가 곧 단일 민족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이 신화에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고 역사의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참화로부터 일어서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낭만적인 해석이요, 현대 사학에서는 어떤 민족이 단일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하나의 허구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에 고구려의 활동 무대였던 만주에서 살던 부족과, 한수(漢水)와 그 이남에서 살던 삼한(三韓)의 부족은 혈통상 이질 종족이었다.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임금인 준(準)이 남하하여 한(韓)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든가, 주몽(朱蒙)의 아들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백제 왕이 되었다는 식의 왕조중심사적 사실을 접어둔다면 삼국시대 이전의 한수 이북의 부족과 그 이남의 부족은 혈통이 달랐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북방 민족은 만주를 기반으로 하는 기마 민족이었으며 남방 민족은 이들과는 다른 혈통이었다. 그렇다면 남방 민족들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예컨대 삼한의 부족들이 문신(文身)을 하고 있었다든가 쌀을 재배한 적이 있었다는 기록들을 비추어 볼 때 이들은 북에서 남하한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민족임을 알 수가 있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은 몸을 노출한 부족들, 바꾸어 말해서 열대나 아열대 부족들의 풍습이었으며 추위로 인하여 살갗을 가리고 사는 북방 민족에게는 이러한 풍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쪽의 문신 부족들이 북방으로부터 이입해 왔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요, 오히려 오키나와(沖繩)를 거쳐 북상한 남방 민족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남북의 이입 경로가 각기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누렸던 문화 유형도 각기 달랐다. 물론 이 두 문화를 놓고 그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이들을 비교함으로써 후세의 사가들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선 그 두 문화를 시원적(始原的)으로 비교하는 데에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 민족이나 국가의 정치적 이념은 그들의 건국 신화나 시조 설화에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시조 설화를 비교해 보면 그것은 매우 대조적이다. 우선 고구려의 시조 설화를 보면 주몽은 활[弓]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반면에,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보면 나정(蘿井)이라는 우물에서 나서 동천(東泉)에서 목욕했다는 사실과 탈해왕(脫解王)이 바다를 건너 온 인물이었다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물[水]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알[卵]에서 낳았다는 점,과 낳을 때 서광이 비추었다는 점, 그리고 말[馬]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시조 설화 중에서 공통된 것들을 제외한다면 고구려는 활이 그리고 신라는 물이 그 대표적 상징으로 남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 두 부족 국가의 성격을 매우 웅변적으로 설명해 준다. 즉 고구려는 무(武)를 숭상하는 기마 민족이었고 신라는 물을 숭상하는 해양 민족인 동시에 하천을 젖줄로 하는 농경 민족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북방 민족과 남방계의 해양 민족이 공존하는 이원적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대륙적 요소와 해양 민족적 요소의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 이러한 원초적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한사군(漢四郡)의 설치와 더불어 시작된 중국 혈통의 유입, 몽고의 백년 지배로 인한 피의 혼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가까이는 일제 35년의 지배와 한국전쟁 등으로 인하여 한 핏줄, 한 조상이라는 단일 민족의 신화는 이미 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로써 그 맥락을 이어온 우리의 민족주의에 혼선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 자체는 이미 낡은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민족주의에 있어서 핏줄

영문 초록

목차

1. 한국의 이원적 성격
2. 신라의 해상 활동: 장보고(張保辜)와 청해진(淸海鎭)
3. 고려시대: 삽별초(三別抄)
4. 조선조의 해양 정책과 충무공의 경우
5. 맺음말: 바다를 잃어나라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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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2004).한국사에서 해양정신. 이순신연구논총, (2),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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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한국사에서 해양정신." 이순신연구논총, .2(2004):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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