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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기 ‘인천대신궁’의 공간 변용과 재인천 일본인 : 유락과 기념의 장소에서 식민지배의 동원장으로

이용수 77

영문명
A study on Transformation of space in Grand Shinto Shrine of Incheon and the Japanese during the Colonial Era : From spaces of entertainment and commemoration to training ground on colonial rule
발행기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자명
박진한(Park, Jin-Han)
간행물 정보
『동방학지』동방학지 제162집, 391~433쪽, 전체 43쪽
주제분류
인문학 > 문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3.06.30
7,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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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이 글에서는 개항기 재인천 일본인 들이 건립한 인천대신궁을 소재로 한일병합 이후 신사/공원이 점차 식민통 치의 공식적인 기구로 편입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신궁 건립 사업은 국가주의 성향의 에나미를 비롯한 지역 유지와 새로운 의례를 창출해 지역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지역 경제인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단순히 종교적인 신심이나 자국 풍의 (종 교적) 문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 기보다 메이지 정부가 추진한 국가신 도화 작업과 공명하는 가운데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대신궁 건립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둘째, 인천대신궁의 경내는 공원의 지목을 단 공원지로 등록되었다. 이는 일본 전관 조계의 면적이 협소해 공공 시설 용지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원과 휴식의 장소”를 확보하는 동시에 조선정부가 부과하는 토지세를 면제 받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공원 부지 안에 일본식 전통 신사 건물이 병존하는 일본공원에는 요정 같은 위락시설이 들어서 “썰렁하고 적적한” 대신궁 경내와 “시끄럽게 북적대는” 요리점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이른바 성속이 혼재한 유흥지로 기능했다. 하지만 청일, 러일전쟁 이후 제국주의 침략과 승전을 기념 하는 행사가 개최되면서 대신궁은 재인천 일본인의 국민적 일체감과 민족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식민통치의 이데올 로기 장치로 활용되었다. 셋째, 한일병합 이후 인천부는 다이 쇼천황의 즉위식을 기념하기위한 대전 행사의 일환으로 신사 건물 개축을 계획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일반에 전가시키고자 신자조직인 우지코(氏 子) 결성을 지시했다. 그리고 대신궁은 부제 및 신사사원 규칙 같은 각종 제도와 법률을 통해 ‘인천신사’로 이름을 바꾸고 식민통치의 공식적인 기구로 편입되었다. 더욱이 인천신사는 만주사변 이후 총력전체제 하에서 황민화 정책을 교육하는 한편 인천시내 소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노동을 동원 하는 현장으로 이용되었다.

영문 초록

In this paper, we examined how the Grand Shinto Shrine of Incheon built by the Japanese settler turn into colonial official institution during colonial era. To summarize its content is as follows: First, the Grand Shinto Shrines of Incheon was planned by the local leader to take control on Japanese community and the local businessman to strengthen economic hegemony. They seem to be taken the lead in construction on the Grand Shinto Shrines to make their economic interests more solidified rather than to provide religious facility similar to hometown. Second, the grounds of the Grand Shinto Shrine were registered as park zone. It was to ensure gardens and resting places in situations that the land for public facilities such as parks, etc was insufficient because the area of Japan Chamberlain Concession was narrow and to be exempt from land tax the Choseon government imposed. However, entertainment facilities like high-class restaurants and restaurants came out so the grounds of the Incheon Grand Shrine could be resort destinations to contrast chilly and lonely parks with loudly adult entertainment districts fumingly. but Grand Shrine became to be the ideological device of colonial rule to show national unity and ethnic superiority, as there was been used as a event site to celebrate a victory of Russo-Japanese war. Third, Incheonbu(an administrative agency of Incheon district during colonial period) planed to reconstruct a Grand Shinto Shrine to commemorate a coronation of Emperor Taishō and organized local residents worshiping the Grand Shrine to shift a economic burden. Also Grand Shrine changed the name to Incheon Shrine through Shrine-Temple rules(1915) and was to be an official instrument on colonial rule.

목차

1. 머리말
2. 인천대신궁 건립과 재인천 일본인 사회
3. 국민적 통합과 제국주의 전쟁의 기념 공간
4. 조계지 인근의 유흥장과 식민지배의 전망대
5. 한일병합 이후 신자조직 결성과 ‘인 천신사’로의 전환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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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

박진한(Park, Jin-Han). (2013).식민지시기 ‘인천대신궁’의 공간 변용과 재인천 일본인 : 유락과 기념의 장소에서 식민지배의 동원장으로. 동방학지, 162 , 391-433

MLA

박진한(Park, Jin-Han). "식민지시기 ‘인천대신궁’의 공간 변용과 재인천 일본인 : 유락과 기념의 장소에서 식민지배의 동원장으로." 동방학지, 162.(2013): 39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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