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일제강점기 경성의 중국인 거리와 ‘魔窟’ 이미지의 정치성
이용수 160
- 영문명
- The Chinese Street of Kyeongseon(京城) and the Politics of ‘the Lair of Devils’(魔窟) Image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저자명
- 오미일(Oh, Mi-Il)
- 간행물 정보
- 『동방학지』동방학지 제163집, 3~33쪽, 전체 31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문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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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이 글은 ‘되놈’ ‘아편장이’란 命名에 내재된 화교에 대한 인종적 차별의식이, 제국주의 지배 하식민지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사회화되어 후세대에게 전승되는지에 대해 분석한 글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그러한 차별인식이 ‘중국인거 리’란 특정 장소의 로컬리티로 이미지화되고, 이후 그 로컬리티가 중국인 일반의 사회적 정체성 으로 투사되어 정형화되는 과정을 해명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경성의 중국인사회는 1880년대부터 이주, 정착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인이나 조선인을 압도할 정도로 조선의 상업계를 주도한 豪商들은 주로 수표정과 관수동에 많이 거주했다. 그러나 아직 공간적으로 중국 인마을이라고 할 뚜렷한 할거지 역은 없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華工들이 유입되면서 남대 문에서 서쪽 방향인 장곡천정‧북미창정‧태평통 2정목‧서소문정으로 주거지가 확대되었다. 특히 1920년대 말에 서소문정은 중국인이 조선인이나 일본인보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마을이 되어 이 거리를 지나게 되면, 마치 중국 山東 省 어느 곳에 온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였다.중국인거리는 뒷골목 주택가에 숨어 있는 아편굴과 매음굴을 매개로 식민주의 언론과 조선인 언론에 의해 ‘獵奇街’ ‘魔窟’로 이미지화되었 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이 공간에 거주하는 중국 인의 사회정체성으로 정형화되어 한국사회에 전승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중국인의 아편 밀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단속하되 일본 인의 모르핀 밀수에는 적당히 관대했던 조선총 독부의 정치적 의도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중국인거리의 마굴 이미지화에는 또한 당시 노동시장에서 중국인에 의한 조선인의 구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던 시대상황도 크게 작용 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임금을 받는 화공은 조선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파렴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생존권의 自衛 차원에서 화공은 추방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고,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청소되어야 할 마굴로 이미지화되었던 것이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analyzes how racism against overseas Chinese hidden in the naming such as ‘Doinom’ or ‘opium eater’ was revealed in the circumstances of colonialism, under the imperialist governance, and how it was passed down to descendants. It especially focuses on explaining the process that the racism was made images as locality of a specific place, ‘the Chinese Street’, and the locality was standardized being projected as the social identity of Chinese people.
Chinese society in Kyeongseong started to be established from 1880’, and was made up of various classes. Wealthy merchants who led commercial circles of Joseon overwhelming Japanese or Joseon people mostly resided in Supyojung (水標町) and Kwansudong(觀水洞). However, there was no distinguished region of independence that could be called a Chinese town yet.
As laborers started to flow in from 1920s, their residential areas were expanded to Janggogcheonjung(長谷川町), Bukmichangjung(北米倉町), Taepyeongtong 2 Jungmok(太平町 2町目), and Seosomunjung(西小門町), which were located west of the South Gate. Especially, in the late 1920s, Seosomunjung came to be a Chinese town that the number of Chinese overwhelmed that of Joseon people or Japanese, and so ones even could feel like being in some place of Shantung Province of China when they passed by this street.
The Chinese Street was made images as ‘the lair of devils’ or ‘underworld’ by the press of colonialism and Joseon people due to dens of opium and prostitution hidden in the ghetto. By the way, on the background, the political intention of the Joseon government-general that was strict towards illicit sale of opium of Chinese yet generous towards morphine smuggling of Japanese was effectual.
At that time, the state of the period that establishment of Joseon people by Chinese was came to be a social issue also greatly worked for the images of the lair of devils in the Chinese Street. Chinese laborers who received wages lower than the minimum cost of living were recognized by Joseon people as shameless fellows who even violate the basic human rights. Thus, in the aspect of self-defense of rights for living, Chinese laborers were considered targets that should be expelled, and the Chinese Street where they were living was made images as the lair of devils that should be removed.
목차
1. 머리말
2. 중국인 인구 추이와 직업별 구성
1) 인구 추이
2) 직업별 구성과 계층적 분화
3. 중국인거리의 형성
4. ‘支那街’ 이미지의 정치성
1) 아편굴과 매음굴
2) ‘支那街=마굴’ 이미지의 정치성
5.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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