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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고구려 문자명왕릉 연구

이용수 234

영문명
A study on the Tomb of King Munjamyeong of Goguryeo
발행기관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저자명
주홍규(Ju Hong-gyu)
간행물 정보
『고문화』제93집, 7~29쪽, 전체 23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19.06.30
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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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고구려의 왕릉은 왕성이 위치했던 집안지역과 평양지역에서 주로 조영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특정 고구려왕의 능으로 단정할 수 있는 물질자료나 문자사료가 확인된 사례가 희소하다. 따라서 무덤의 규모 및 외형적 특징, 입지조건, 공반 유물 등이 고구려 왕릉 판단의 기준이 된다. 본 연구는 고구려의 기단봉토석실분을 대상으로 문자명왕(492~519년)의 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문자명왕릉에 관한 연구는 고구려가 집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 왕릉의 구조에서 어떠한 일련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본고에서 문자명왕릉의 후보로 기단봉토석실분을 지목하는 이유는, 평양으로 천도한 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 대까지도 집안지역의 매장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 집안지역에서 유행한 적석총과 평양지역에서 유행한 봉토석실분이 결합된 특징이 기단봉토석실분에서 모두 확인된다. 현재까지 고구려의 기단봉토석실분으로 보고된 무덤으로는 우산 2115호분, 경신리 1호분, 호남리 사신총, 토포리 대총, 전 동명왕릉이 있다. 이와 같은 무덤들의 규모 및 구조의 분석을 통해 상호 비교 및 고찰을 행한 결과, 전 동명왕릉을 장군총과 경신리 1호분의 계보를 잇는 문자명왕릉으로 비정할 수 있다. 반면, 토포리 대총과 호남리 사신총, 우산 2115호분은 전 동명왕릉에 후행하는 6세기 중엽경에 조영된 무덤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고구려의 기단봉토석실분은 집안지역에서 평양지역으로 천도한 이후인 5세기 말에서 6세기 중엽경이라는 한정된 시기에 국한되어 조영된 무덤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전 동명왕릉의 전방 남쪽 150m 지점에 위치하는 정릉사지는 문자명왕릉으로 비정한 전 동명왕릉과 능사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유물로 볼 때 정릉사지의 조영시기는 6세기 1/4기 이후로 추정되고, 이는 전 동명왕릉이 문자명왕릉이라는 것을 방증해 준다.

영문 초록

Most royal tombs of Goguryeo are thought to have been constructed in Jian and Pyongyang, but there are few archaeological materials or historical records which can determine tombs for certain Goguryeo kings. Therefore, size, external appearances, location and association relics are the criteria for determining the tombs of Goguryeo. This study is to reveal the tomb of King Munjamyeong(492~519) by examining Goguryeo’s stone chamber mound tombs with stylobate. The study of the tomb of King Munjamyeong is important because it provides an evidence to reveal a series of changes in the structure of royal tombs after moving Goguryeo’s capital from Jian to Pyongyang. The reason why the stone chamber mound tombs with stylobate are pointed out as a candidate for the tomb of King Munjamyeong is because it is highly possible that the burial traditions of Jian remained until the time of King Munjamyeong who succeeded King Jangsu who moved the cpital to Pyonya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mbitnation of stone-filed tombs in Jian and stone chamber mound tombs in Pyongyang are all found in the stone chamber mound tombs with stylobate. Tombs reported as Goguryeo’s stone chamber mound tomb so far are Wusan No.2115, Gyoungshinri Tomb No.1, Honamri Tomb with four directional animals, the Great Tomb of Topori, Tomb of King Dongmyeong.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size and structure of these tobms, it is possible to determine Tomb of King Dongmyeong as Tomb of King Munjamyeong, which continues the tradition of Janggunchong and Gyoungshinri Tomb No.1. On the other hand, the Great Tomb of Topori, Honamri Tomb with four directional animals, Wusan tomb No.2115 are believed to be tombs that were build in middle of 6th century following Tomb of King Dongmyeong. It is assumed that these stone chamber mound tombs with stylobate of Goguryeo were built in late 5th century to the mid 6th century when the time after the moving of the capital from Jian to Pyongyang. Meanwhile, Jeongneung Temple, located about 150 meters south of the Tomb of King Dongmyeong, is believed to have been in a ‘tomb-temple’ relation with Tomb of King Dongmyeong which is determined to Tomb of King Munjamyeong. According to the relics, it is thought to be after the first quarter of the 6th century that Jeongneung Temple was built and it proves that Tomb of King Dongmyeong is Tomb of King Munjamyeong.

목차

Ⅰ. 머리말
Ⅱ. 선행연구의 정리
Ⅲ. 고구려 기단봉토석실분의 검토
Ⅳ. 고구려 문자명왕릉의 비정
Ⅴ.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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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규(Ju Hong-gyu). (2019).고구려 문자명왕릉 연구. 고문화, 93 ,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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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규(Ju Hong-gyu). "고구려 문자명왕릉 연구." 고문화, 93.(2019):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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