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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원주지역 조선백자가마터의 성격

이용수 150

영문명
A Study of Chosun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Wonju, Kangwondo
발행기관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저자명
김경중
간행물 정보
『고문화』제61집, 165~191쪽, 전체 27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03.06.30
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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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현재까지 원주지역에서 확인된 백자가마터는 모두 12곳으로 지정면 판대리와 귀래면 귀래l리 등지에서 조선 전기 백자가마터 6곳, 귀래면 귀래2리와 손곡3리 등지에서 조선 후기 백자가마터 6곳으로 조선시대 전ㆍ후기에 걸쳐서 가마가 설치ㆍ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원주지역에서 조선시대 전ㆍ후기 백자가마가 설치ㆍ운영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원주지역에서는 양질의 태토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중앙관요인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원주지역의 태토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원주지역에 양질의 백토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지역 백자가마는 광주 분원처럼 양질의 백토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가마 운영시 필요한 땔나무가 풍부했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도 땔나무가 부족하여 가마를 10년마다 한번씩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땔나무가 가마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 비해 원주지역의 경우에는 땔나무를 확보하는데 훨씬 유리 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귀래2리 백자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가마가 광주 분원에 비해 비교적 장기간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소규모생산체제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땔나무 때문에 가마를 이동해야 될 필요성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원주지역 백자가마터의 구조와 유물의 특징을 살펴보면, 발굴조사된 귀래2리의 경우, 가마의 구조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터인 순천 문길리ㆍ승주 후곡리ㆍ곡성 송강리ㆍ안성 화곡리ㆍ대전 장안동ㆍ보령 늑 전리ㆍ충주 미륵리ㆍ무안 피서리, 그리고 중앙관요인 광주 분원리 2호가마와 동일한 평면형태로 후기 백자 가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백자의 형식적 특징은 경기도 광주 중앙관요의 대량생산용 백자 기본형과 같은 형태를 지닌 지방백자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광주 분원과 원주지역은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상호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형과 태토, 유색면에서 경기도 광주 분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주지역은 가마를 설치ㆍ운영하는데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귀래 2리 백자가마터의 예를 볼 때 가마의 구조는 조선 전ㆍ후기의 전형적인 백자가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유물에서는 광주분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문 초록

White Porcelain kiln sites confirmed in Wonju are a total of 12: Chijeong-Myon, Pandea-ri, Guyre-1ri etc. in the early period of Chosun Dynasty, and Guyre-2ri and Songok-ri etc. There were several reasons why Wonju was the major kiln site during the early and late period of Chosun. First, The existence of an abundant body was another reason. According to the literature, Central Government Kiln in Gwangju, Kyunggido used the body from Wonju. This region possessed of good qualified white clay and no efforts were necessary to get it as were in Gwangju. Second, plenty of firewood was in this region. Gwangju kiln moved to other places every 10 years due to lack of firewoods. However, Wonju secured firewoods so that the kiln site kept its own place for a long time. According to the excavation in Guyre-2ri kiln site, the site seemed to have been operated longer than the one in Gwangju. It could be explained that the site was in a small scale as well as had less necessary to move. The construction of the white porcelain kiln site in Wonju was a plane figure which was identical with the kiln sites of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Suncheon Moongil-ri, Gokseong Songgang-ri, Ansung Hwagok-ri, Daejeon Jangan-dong, Boryeong Nykjeon-ri, Chungju Miryuk-ri, Muan Piseo-ri, and Gwangju Boonwon-ri 2nd kiln. The charateristic of white porcelain from this region was local porcelain which was identical with mass produced basic style in Gwangju Boonwon. Gwangju Boonwon and Wonju were very similar in shape, body, and color because both were located in the riverside of Namhangang. Above all, Wonju was well located to facilitate and operate kiln. As found in white porcelain kiln of Gyure-2ri, its construction belongs to a typical shape shown during the early and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and the products were influneced by Gwangj u Boonwon.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연구현황
Ⅲ. 원주지역의 백자가마터
Ⅳ. 원주지역 백자가마터의 성격
Ⅴ. 결론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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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중. (2003).원주지역 조선백자가마터의 성격. 고문화, 61 , 16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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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중. "원주지역 조선백자가마터의 성격." 고문화, 61.(2003): 16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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