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9세기 전후 신라의 대당외교와 淮南藩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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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
- Silla’s Diplomacy with the Tang and the Huainan Circuit around the 9th Century
- 발행기관
- 북악사학회
- 저자명
- 조이옥(lee-ok Cho)
- 간행물 정보
- 『북악사론』제21집, 2070~228쪽, 전체 1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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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본 글은 강회지역을 통할하던 淮南藩鎭에 초점을 맞추어 신라와 당의 외교 관계의 실상에 접근한 것이다. 안사의 난(755~763)을 거치면서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절도사가 당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신라가 당 조정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위치한 번진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안사의 난과 李正己 ⼀家가 산동지역을 지배하던 동안 신라는 서해 남부 사단항로를 활용해 揚州의 회남 번진을 경유해 당에 이르는 통로를 운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자강과 남북을 잇는 대운하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인 회남의 양주는운하를 이용해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당 수도인 장안에 도착할 수 있는 또하나의 통로였다. 이렇게 신라 사절이 양주를 경유해 당과 통교하면서 강회지역을 관할하던 회남 절도사는 양국 간 외교·교역의 매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안사의 난 이후 당 중심의 국제관계가 점차 이완되는 가운데 신라와 당의 외교 관계에 있어 회남 번진의 역할을 해명하는 일은 기왕의 조공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양국 관계를조명하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영문 초록
This article examines the actual nature of Silla-Tang relations through the diplomatic exchanges between Silla and the Huainan Circuit around the 9th century. Following the An Lushan Rebellion, the military governors originally appointed in specific areas expanded their control across the Tang territory. As a result, Silla had no choice but to pass through intermediary circuits to communicate with the Tang. Given that the Hebei and Henan regions, the bases of the rebellion, were mired in prolonged political turmoil, it is believed that Silla maintained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Tang via the Huainan Circuit, which had its administrative center in Yangzhou.
Amid these shifts in the political landscape surrounding the Tang, the Huainan Circuit in Yangzhou, situated along the route connecting Tang and Silla, served as a bridge for diplomacy and trade between the two nations. As the Tang-centered international order began to loosen around the 9th century, elucidating the negotiations between Silla and the Huainan Circuit offers a new perspective on Silla-Tang relations, moving beyond the traditional framework of tributary diplomacy.
목차
Ⅰ. 머리말
Ⅱ. 당의 정세 변화와 새로운 사행로의 모색
Ⅲ. 서해 남부 사단항로의 활용과 淮南藩鎭의 역할
Ⅳ. 맺음말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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