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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1954년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초기 한미동맹

이용수 58

영문명
The Failed Summit: 1954 Rhee Syngman’s visit to US and Early ROK-U.S. Alliance
발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저자명
송재경(Jaegyoung Song)
간행물 정보
『역사문화연구』제92집, 237~270쪽, 전체 34쪽
주제분류
인문학 > 역사학
파일형태
PDF
발행일자
2024.11.30
6,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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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의
논문 표지

국문 초록

1954년 이승만의 방미는 최초의 한미 정상회담이자, 한국의 통일문제, 미국의 원조 공여,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등 당시 한미관계의 주요 이슈를 논의할 기회였다. 6.25전쟁의 정전부터 내려온 양측의 갈등을 봉합하고, 양국이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뢰관계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이승만을 초빙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위신을 증진시켜주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하려 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은 모호한 공동성명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은 한미합의의사록의 합의를 한국 측에게 강요하는 전략으로 넘어갔다. 왜 이런 식으로 양측의 갈등은 이어졌을까? 이 연구는 한미 정상회담이 실패한 원인으로 봉쇄전략과 한미동맹에 대한 이승만과 미국의 입장 차이를 주목한다. 이승만은 미국의 봉쇄전략이 공산 진영에 대한 군사적 대응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동맹으로서 공격의 선봉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려 했다. 이승만은 장제스에게 접근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타이완 측도 중국대륙에 상륙하여 전투에 돌입한다는 ‘비밀 군사계획’을 마련했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아이젠하워, 덜레스 등 워싱턴의 고위층을 설득하려 했다. 이승만은 설득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 의회 상·하원 연설에서 미·중 전쟁을 주장했다. 이어 워싱턴,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연설로 자신의 주장을 선전했다. 이승만과 정상회담에 실패한 후, 미국은 합의의사록을 마련하여 한국 측에게 동의를 요구하는 일괄타결 방식의 협상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효와 대한 원조 프로그램을 늦추는 방식으로 지렛대를 마련했다. 협상보다 압력을 가하여 관철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승만의 방미는 결국 곧 수립될 한미동맹이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데 일조했다. 또 경제재건 등 시급했던 문제들을 논의할 기회도 잃었다. 이후의 한미동맹은 양국이 공동의 이해를 추구하는 동맹이라기보다, 미국이 한국을 통제하는 동맹에 가까웠다.

영문 초록

Syngman Rhee's 1954 visit to the United States marked the first Korea-U.S. summit and provided an opportunity to discuss key issues in the bilateral relationship, including Korean unification, U.S. aid, and the ratification of the U.S.-Korea Mutual Defense Treaty. The aim was to bridge the divide between the two nations following the Korean War armistice and foster a trusting relationship to solidify the alliance. The United States invited Rhee to enhance his political standing and sought a compromise between the two sides. However, the summit yielded few tangible results beyond a vague joint statement, and the U.S. subsequently adopted a strategy of imposing the agreed minutes on South Korea. This study attributes the failure of the summit to the differing perspectives of Rhee and the U.S. on containment strategy and the ROK-U.S. alliance. Rhee believed that the U.S. containment strategy should be more militaristic, advocating for a preemptive strike against the communist bloc. He also sought to position South Korea as the frontline state in the U.S.-led alliance. To this end, Rhee secretly plotted with Chiang Kai-shek to involve the Republic of China in a potential conflict on the Korean Peninsula. Despite failing to persuade the U.S. leadership, Rhee continued to advocate for a U.S.-China war in speeches before the U.S. Congress and in major cities. Following the failed summit, the U.S. shifted to a take-it-or-leave-it approach, demanding South Korea's acceptance of the agreed minutes, delaying of Mutual Defense Treaty and aid packages as leverage. Ultimately, Rhee's visit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a ROK-U.S. alliance that lacked a strong foundation of mutual trust. Moreover, the summit failed to address pressing issues. The subsequent alliance was less about shared interests and more about U.S. dominance.

목차

Ⅰ. 머리말
Ⅱ. 이승만 방미의 배경과 양측의 의도
Ⅲ. 1954년 7월 26~30일의 한미 정상회담
Ⅳ. 회담 후 이승만의 미국 순회 연설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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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경(Jaegyoung Song). (2024).1954년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초기 한미동맹. 역사문화연구, (), 23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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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경(Jaegyoung Song). "1954년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초기 한미동맹." 역사문화연구, (2024): 23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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