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
상해 임시정부와 의친왕: 구황실 조항과 의친왕의 ‘탈국’ 사건을 중심으로
이용수 53
- 영문명
-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and Prince Ui-chin: Focusing on the provision “favoring the former royal family” and Prince Ui-chin's exile to Shanghai
- 발행기관
-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 저자명
- 반병률(Byung Yool Ban)
- 간행물 정보
- 『역사문화연구』제92집, 201~236쪽, 전체 36쪽
- 주제분류
- 인문학 > 역사학
- 파일형태
- 발행일자
- 2024.11.30
7,120원
구매일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이 학술논문 정보는 (주)교보문고와 각 발행기관 사이에 저작물 이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교보문고를 통해 제공되고 있습니다.

국문 초록
의친왕 이강 공은 항일의식이 강하여 항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황실 인사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인물이다. 1919년 11월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이 추진한 의친왕 국내 탈출계획은 의친왕의 망명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전협 등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대동단의 조직적 붕괴를 가져왔다.
의친왕 이강의 상해 망명 계획은 상해 임시정부의 호응과 지원 속에 추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시정부 인사들은 ‘임시헌장’(1919년 4월 11일)과 ‘임시헌법’에 ‘구황실 우대 조항’을 포함할 것인가 여부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황실 인사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논의 과정에서 임시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황실, 귀족, 고위 관료의 유치가 임시정부의 대내외적 위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인사들은 ‘구황실 우대’ 조항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갈라져 논쟁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이 조항을 삽입하기로 합의하였다. 의친왕 망명 사건은 상해임시정부 요인들 사이에 구황실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공유되고 있던 상황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일제 식민지 당국은 언론과 외교를 통하여 의친왕의 항일의지를 왜곡하고 망명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 국무원은 의친왕의 ‘친서’를 번역.공포하여 내외에 선전하기로 의결하였고, 『독립신문』은 의친왕 망명사건을 수차례의 보도하여 의친왕의 망명 사건을 크게 부각시켰다. 특히 『독립신문』은 대동단 총재이자 의친왕의 측근으로서 앞서 상해로 망명했던 김가진의 인터뷰를 통하여 일본측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의친왕의 진정한 항일의식과 망명 의지를 밝혔다.
영문 초록
Prince Ui-chin(Yi Gang) was a figure positively regarded among Koreans for his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and potential to play a central role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November 1919, the Daedongdan(Union of Great Unity), an anti-Japanese independence organization, initiated a plan for the prince to escape the country to Shanghai in China. However, this plan ultimately failed, leading to the arrest of key figures like Jeon Hyeop, which resulted in the organizational collapse of the Daedongdan.
The plan for Prince Ui-chin's exile to Shanghai can be seen as having been pursued with the support and cooperation of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in Shanghai. During discussions about whether to include provision “favoring the former royal family” in the “Provisional Charter(Imsi Heonjang)”(April 11, 1919) and the “Provisional Constitution(Imsi Heonbeop)”(September 11, 1919), it is likely that official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shared a friendly stance toward royal family members. In this context, there was a shared recognition among member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that attracting royalty, nobility, and former high-ranking officials would enhance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standing of the government.
At that time, official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and the Provisional Assembly were divided on the issue of the “favoring the former royal family” provision; however, they ultimately agreed to include it. The exile of Prince Ui-chin occurred in an atmosphere where a friendly attitude towards the former royal family was already shared among key figures in the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sought to distort Prince Ui-chin's anti-Japanese intentions and minimize the significance of the exile incident through its own media and diplomacy. However, the National Assembly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decided to translate and publicize the prince's “personal letter(chinseo)” to promote it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The Dongnip Sinmun(Independence), reported on the exile multiple times, greatly highlighting the incident. In particular, the Independence, through an interview with Gim Ga-jin, the chairman of the Daedongdan and a close associate of the prince who had already fled to Shanghai on Octorber 30, 1919, exposed the fabrications of the Japanese side and revealed Prince Ui-chin's true anti-Japanese consciousness and intention to seek exile.
목차
Ⅰ. 머리말
Ⅱ. 임시정부 임시헌장, 임시헌법의 구황실 우대조항
Ⅲ. 대동단 총재 김가진의 상해행과 의친왕의 ‘탈국(脫國)’ 거사
Ⅳ. 대동단의 제2회 독립선언·시위운동
Ⅴ. 맺음말
키워드
해당간행물 수록 논문
- 1906년 천도교와 일진회의 분리 과정 재고찰
- 조영무(趙英茂)의 정치활동과 위상
- 광개토왕릉비 무훈기사의 서술항목과 서사구조
- 신라 外司正에 대한 종합적 고찰
- 무관심과 관심의 경계 : 조선에서 궁예와 그의 나라를 기억하는 양면적 방식들
- 『黨議通略』 필사본 연구
- 상해 임시정부와 의친왕: 구황실 조항과 의친왕의 ‘탈국’ 사건을 중심으로
- 1954년 이승만의 방미외교와 초기 한미동맹
-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의 넬슨-이순신 비교 발언에 대한 역사적 고찰
- [서평] 육영수, 『근대 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 (돌베개, 2024)
- 설립자가 있는 광주 <고려인마을> 공동체의 발전 단계별 특성과 한계
관련논문
인문학 > 역사학분야 BEST
- 지역문화유산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군산대학교 박물관 ‘소원배 만들기’를 중심으로-
- 경주지역 신라사찰 출토 매납토기의 용도와 특징
- 일제강점기 조선고적조사사업과 한국고고학사
최근 이용한 논문
교보eBook 첫 방문을 환영 합니다!
신규가입 혜택 지급이 완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 가능한 교보e캐시 1,000원 (유효기간 7일)
지금 바로 교보eBook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해 보세요!
